임경선 산문(2021). 평범한 결혼생활, 토스트.
코로나19로 거리가 가족 간의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작가 임경선이 결혼에 대해 남편에 대해 산문집을 냈다. 131쪽의 가벼운 산문집 안에 마음껏 솔직한 그녀의 문장이 담겨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다. 우울한 기분이 날아가기를 소망하며......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녀의 시선은 중심이 분명하여 늘 신선하고 자극이 된다. 결혼에 관한 글이지만 그녀의 시선은 보통의 인간관계에도 통하는 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쁜 작가가 굳이 이런 책까지 쓰는 이유는 아직도 딱히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결혼도 안 한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결혼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지극히 정상적(?)이면서 평범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소일 삼아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효율적인 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읽은 다음에는 하고 싶은 말을 많아질 수도 있다. ㅋㅋ
아무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결혼이 나를 압도한 이유는, 그것이 내가 누군가로부터 격하게 사랑받고 있다는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한 순간의 착각이라 해도 나중에 오판으로 결론 난다 해도 말이다. 100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결혼의 불리함과 비합리성을 설득시킨다 해도, 망할 줄 알면서도 뛰어드는 어떤 맹목적인 마음에, 나는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귀한 찰나를 본다. (108쪽)
누군가에게 의지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알고 보면 무척 쓸쓸한 인간이라는 것을 살면서 불현듯 깨닫는다. 뿐만 아니라 자기와 가까운 사람도 쓸쓸하게 만들어버린다. (118쪽)
남편을 덥석 태운 작은 박스카를 텅 빈 4차선에서 불법 유턴해서 액셀레이터를 힘차게 밟았다. 주인에게 수거되지 못해 여전히 추위에 다리를 덜덜 떨던 좀비들을 차창 밖으로 구경하며,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신나 했다. 이 밤 중에서 마누라가 자기를 데리러 와준 것이 으쓱했던 모양이다. 헤벌쭉해하는 조수석의 그를 향해 귀갓길 내내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나 역시도 내심 그런 수고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그는 내게 완벽하게 의지했고 나는 그의 구원자였으니까.(120쪽)
49
이 책의 초고는 처음으로 남편에게 읽혔다. 그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밟아야 할 절차인 것이다. 떨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초고를 읽은 후 그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다 잘 봤는데 내가 궁금한 건 과연 이걸 돈 주고 사 읽을 사람이 있겠냐는 거야."
예상 밖의 논점에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물론 이 책이 어떤 도움'이 될 만한 책은 아니지. 교훈과 지침 같은 건 없으니까. 이건 우리 두 사람 이야기니까 아이에 대한 얘기도 일부로 뺐고, 뭔가를 가르치려는 뉘앙스는 내게 싫어서 일부러 걷어냈어."
나는 '아내'가 아닌 '저자' 모드로 돌아와 내가 쓴 원고를 주저리주저리 변명, 아니 나 자신을 변호했다. 남편이 그 말을 듣더니 실소를 터트렸다.
"아, 그야 당연하지. 우리 같은 부부가 무슨 지침이나 교훈을 줄 수 있겠어."
역시 깨친 분.
남편의 말은 매우 타당하고 건전했다. 한 부부의 결혼 생활이 다른 부부에게 본보기가 되려는 것처럼 사악하고 위선적인 것은 없다.
그래도 이 작은 책을 쓰는 동안 얻은 한 가지 꺠달음쯤은 밝히고 싶다. 나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적당히 피하면서 사는 것도 인간이 가진 지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결혼이란 뭘까. 부부란 뭘까. 행복이란 뭘까. 같은 것들을 정색하고 헤아리려고 골몰한다거나, 100퍼센트의 진심이나 진실 따위를 지금 당장 서로에게 에누리 없이 부딪쳐서 어떤 결론을 얻으려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대개 실패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질문들의 종착지는 결국 '그럼 나는 왜 사는가'와 같은 막다른 골목일 뿐인데. 그렇다면 왔던 길을 도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패배가 아님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무엇인가의 당위나 절대성을 진지하게 사유하기 시작하면 급 피로가 몰리가 피가 머리로 쏠려 편두통이 재발할 것이다. 그럴 때는 운동화를 신고 동네로 산책을 나가 맛있는 스콘을 사 먹는 것이 현명하겠다. 적당한 때가 오면 부부가 무엇인지. 결혼이 무엇인지, 각 잡고 사색하지 않아도 그쪽에서 먼저 우리에게 어쩌다 한 번씩 알려줄 테니까. 마치 이제 알았냐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툭 치면서.
혹은 진심이나 진실은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말을 믿는다면, 그리고 진심이나 진실을 알고 싶다면 마지막까지 따라가보는 수밖엔 도리가 없다.(126~128쪽)
만난 지 3주 만에 청혼하고, 고작 석 달을 연애하고 결혼했단다. 운명이 아니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도저히 그런 운명은 내겐 없는 것임을. 그리고 20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딸도 있다. 죽을병도 넘어왔다. 넘치는 끼와 개성을 가진 여성임은 전작으로 이미 알고 있다. 엄청난 참을성 따위는 아예 없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동일한 상황에서 같은 대상과 밀접 접촉을 유지한 채 20년 동안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녀들을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을 존경한다. 세상 가장 힘든 비즈니스라는 '결혼'을 성공적으로 해나가고 있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 믿는다. 굳이 행복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그녀들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관계는 비슷하다. 그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진실을 알려면 끝까지 가보는 거다. ㅎㅎ 표지 그림이 멋지다. 그림처럼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 당신의 책은 언제나 나를 자극한다.
'가끔은 이렇게 > I Love BOOK^^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2022-15 (1) | 2022.02.11 |
---|---|
회복탄력성 2022-14 (0) | 2022.02.11 |
설날연휴도 소설, 2022-8~ (0) | 2022.01.29 |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 2022-8 (0) | 2022.01.24 |
작은 마음 동호회, 2022-6 (0) | 2022.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