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나의 언어

자배기 속 다슬기

Jeeum 2019. 11. 18. 02:30


자배기 속 다슬기

 

    

옹기 자배기로 수반을 만들었다. 엄마가 장을 담을 때 쓰던 돌로, 중심을 잡고 작은 펌프를 달았다. 잔잔한 돌을 깔고 수경재배용 식물을 심었다. 사기로 만든 못생긴 개구리 두 마리도 넣었다. 나름 운치가 있다. 거실 한쪽, 항상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곳에 두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좋다. 종일 누워있는 엄마의 귀에도 개울물 흐르는 듯한 졸졸거림이 들렸으면 싶었다.

    

 

아는 분의 일터에 들렀다 우연히 살아있는 다슬기 몇 마리를 얻었다. 그 다슬기를 자배기 수반에 넣었다. 다슬기를 넣은 다음부터는 자주 청소를 해주지 않아도 물이 깨끗했다. 다슬기를 넣었다는 것을 잊고 있다 물을 갈아 줄 때마다 가끔 만나곤 했다. 녀석들이 살아있는 건가 싶었다. 


    

 

늦가을의 햇살이 깊숙이 들어오는 시간, 자배기에 담아 놓은 스킨 답서스의 커다란 잎에 매달린 다슬기 한 마리가 발견했다. 이파리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듯했다. 어디에 숨어있다 어떻게 올라왔는지 대견스럽기도 했다. 잎새 끝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사진을 찍느라 녀석의 위태로움에는 무신경했다. 아직도 살아있다니 놀라웠다.

 

검색을 해보니 다슬기는 넓고 평편한 발을 이용하여 이동을 하며 발에서는 점액질이 분비된다고 한다. 사람처럼 발은 없으나 자신의 몸을 이용해 이동을 하는 것이다. 작은 몸을 사용해 이동하느라 고생이 많을 법 했다. 작은 돌멩이 속 보금자리를 벗어나 줄기를 타고 잎까지 먼 길을 천천히 오른 것이다. 우리 집 다슬기가 사는 세상은 지름 약 30센티미터의 자배기 안. 몸을 발삼아 먼 길을 외출할 때 마다 다슬기는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이 과거로 나를 데리고 간다.

 

제주 올레 17코스를 걷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길을 걷고 싶은 충동에 무작정 김해를 떠났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이호테우 해변으로 갔다. 멀리 빨간 등대가 보인다. 언제 봐도 당당하다. 바다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천천히 걷는다. 제주시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 까지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3월의 햇살을 아낌없이 받는다. 바다를 거쳐 온 햇살은 따뜻하다 못해 따갑다. 부풀어 오르는 기온을 이기지 못하고 생긴 두통이 어느새 사라졌다.

 

터벅터벅 탈래탈래 걷는다. 어느새 가벼워진 마음이 깃털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눈이 감겨온다.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은 오롯이 자유로움이다. 가다가 힘들면 바다를 본다. 다리가 무거워지면 그냥 주저앉아도 된다. 바쁘게 오가는 차들이 생산하는 소음은 두 귀를 거쳐 바다로 곧장 달려들어 이내 사라진다. 푸르다 못해 퍼런 바다에 옹기종기 구름이 모여 있다. 두 발을 마음에 싣고 자유를 향해 날아오른다.

 

발이 있건 없건 스스로의 의지대로 존재하는 공간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순간 모든 생명은 살아있다, 자배기 속의 세상을 모든 것으로 알고 천천히 움직이는 삶의 다슬기 한 마리. 가능한 빠르게 이동하고 바쁘게 사는 것을 능력이라 알고 살아가는 나. 어느 것의 인생이 더욱 풍요로울까? 그러나 이제 너무 빠른 것이 버겁다. 앞서가지도 못하고 따라가는 것도 어렵다. 이제는 작은 세상이라고 천천히 두 발로 걸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20191118, Night of Mo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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