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이상한 출근이었다. 일찌감치 채비를 하고, 갖고 가야 할 물건도 잘 챙겼다. 음식물 쓰레기 봉지도 잘 묶어 현관 앞에 내놓았다.. 노트북 전용선, 안경, 마스크, 휴대폰, 음식물 처리용 카드 등등
엄마가 없는 공간에서는 시간이 많아졌다. 덤으로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출근에 허둥대지 않게 되었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느긋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자동차 키가 없다는 것을 그제서 발견했다. 양손의 짐을 그대로 들고 가서 열쇠를 챙겨 왔다. 차를 몰고 나가다 휴대폰이 없음을 알았다. 또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뒤져도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히 잘 챙긴 듯한데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여유가 지나치게 넘쳐 무심히 지나온 조금 전의 시간을 조각내 돌려보았다.
우아하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동안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잠시 통 위에 두고 있다. 전화기를 거기에 두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천천히 걸어 주차장으로 가고 있다. 전혀 급한 모습이 아니다. 자동차 키를 가지러 집과 주차장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 사이에 녀석은 가깝지만 먼 공간에서 낯선 누군가와 몰래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당황해서 급해진 나는 경비실에도 물어보고, 집으로 다시 들어가 전화를 걸어보았다. 몇 번이고 걸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남아돌던 아침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미 업무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경비 아저씨께 부탁드리고 출근했다.
직장인의 일과는 늘 비슷하다. 하루는 꽁지에 불난 새처럼 도망간다. 항상 손에 쥐고 다니던 것이 없으니 일은 번거로워졌다. PC를 이용한 카톡 그리고 사무실 전화로 일을 했다. 사무실 전화가 전부이던 시절이 아득하다.
그 녀석 하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을 하느라 수고롭기는 했으나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하고 가뿐했다,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진짜 돌아오지 않으면 새롭고 멋진 녀석을 다시 만날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일까? 아니면 지난 두 번의 경험 때문일까? 그렇다. 사실 녀석을 잃어버리고 찾은 것이 처음이 아니다. 누군가 사랑은 돌아온다고 했던가? 믿고 기다리면 녀석은 무사히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이니까^^
곁을 떠난 녀석을 찾아야 한다는 핑계로 일찍 퇴근을 했다. 허나 여전히 경비실에도 없다고 한다. 잃어버린 시간대의 CCTV를 확인하고 포기할지 말지를 결정할 일만 남았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번 더 전화를 해보는 것이 모두였다. 기대도 없이 전화했다. 종일 수없이 해도 받지 않던 터라 새털만큼의 기대도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요지경. 이런 순간 반전이 찾아온다. 신호가 채 가기도 전에 낯선 남성의 굵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리실 직원이라며 찾으러 오시라 한다. 역시 녀석은 돌아오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루만큼의 햇살이 서서히 저물어갈 준비를 하는 시각, 품을 벗어났지만 고생한 흔적 하나 없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 녀석은 다시 돌아왔다.
현재 함께하는 녀석을 만나지는 3년이 넘었다. 이제 슬슬 헤어져도 크게 무리가 아닌 때가 되었다. 하지만 유달리 사건과 사연이 많아서 인지 헤어지기 아쉬운 구석이 있다, 함께 하는 동안 나의 엄마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오신 지1년 반이 흐른 지난 겨울 결국 멀리 가셨다. 엄마를 따라 강아지도 떠났다. 녀석의 심장에는 엄마와 강아지와 함께한 많은 추억이 새겨져 있다. 더욱이 녀석은 항상 나의 발걸음에 동행해 주었다. 함께 미국과 유럽을 다녔다. 그러던 중 대구공항 화장실에 녀석을 홀로 두고 출국했다가 다시 만난 일도 있다. 심지어 녀석을 기차에 그냥 두고 내려 구미까지 혼자 밤 여행을 하고, 다음날 동대구역에서 상봉하기도 했다.
휴대전화기가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고, 여가생활의 수단이 된 지 오래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할 때도 취미나 여가생활을 할 때조차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놓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애물단지 취급을 받기도 하고, 오히려 사람이 휴대전화의 노예로 전락했다고 하기도 한다.
느닷없이 이런 일을 겪고 나니 휴대전화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동무가 된 듯한 생각이 든다. 몇 년간 늘 가방에 넣거나 손에 들고 다니며 공유한 시간과 흔적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물건이나 사람이 또 있을까?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먹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때 알려주기도 하는 고마운 친구이다. 녀석이 알려주는 그것을 다시 일기장이나 블로그에 메모하는 일도 있으니 말이다.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더욱 좋은 친구. 오랜만에 그런 친구에게 안부라도 전해야겠다. 이럴 때도 역시 녀석 없이는 안 된다. 하하하. 역시 너는 내 사랑일지도~~. (2020.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