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나의 언어

개꿈 이야기

Jeeum 2020. 6. 13. 08:55

꿈을 꾸었다.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적어두어야 한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고, 황당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꿈이 내게 말을 걸고 있는 듯 같아 금방 잊힐 것 같지 않다.

 

꿈속에서는 여전히 건강한 엄마가 계셨다. 엄마는 얼핏 밋밋하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와 사는 나는 행복해 보였다. 역시 좋았다.

 

우리 집이었다. ‘수필과 지성을 지키는 든든한 어른인 장호병 교수님이 느닷없이 와서 문을 두드린다. 마치 저녁을 먹고 마실 삼아 마을 카페에 차를 마시러 온 듯 가벼운 표정이었다. 언제나 나의 꿈이 그렇듯 시작도 황당하고, 사건의 연결도 비약적이다. 연결고리 전혀 없는 사람들과의 사건이 묘하게 자연스럽게 연결되곤 한다.

 

나는 분명 내 아파트에 있는데 거긴 카페이기도 했다. 교수님께서 커피를 한잔 달라고 했다. 능숙하게 차를 내드렸다. 할 말이 있어 왔다고 했다. 커피 한잔을 마시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할 말이 있노라 하시면서 한잔을 다 비울 동안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으셨다. 평소와 다름없는 부드러운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셨다. 커피 값은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며 4,000원을 현금으로 주셨다. 그리곤 볼 일을 모두 마친 표정으로 집(?)을 나서려 했다..

 

용건을 묻는 나에게 교수님은 다시 의자에 앉아 말을 시작했다.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그러다 다시 방을 나서며 짧게 말했다. 계속 글을 쓰라고. 그것이 전부였다.

 

무거운 꿈도 있다. 은근히 기분 상하는 꿈도 있어 그런 꿈을 꾸는 날은 일상을 조심해야 한다. 엄청난 대박을 준다는 꿈도 많다. 그러나 나는 아직 꿈과는 아무 인연이 없다. 지금껏 개꿈이 전공이다. 옛날 어른들은 예지몽이라는 표현도 했다. 꿈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려준다고 믿었다. 태몽도 그런 것의 일종이다. 아이를 가진 여성에게 태몽은 언제나 좋은 것이어야 한다. 진짜일까 싶을 정도로 모든 엄마들은 언제나 좋은 꿈을 태몽으로 꾸었다고 했다. 심지어 꿈으로 자녀의 성별을 맞추기도 한다 했다. 자녀에 관한 한 언제나 최고이길 바라는 모든 엄마들의 소망인 것이다. 그러나 개꿈이 전공인 나는 꿈이 주는 시사나 예지를 믿지 않는다.

 

어젯밤의 꿈이 개꿈인지 아님 예지몽인지는 알 수 없다. 언제나 개꿈일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은근히 기분 좋아지는 꿈이다. 마음 깊이 살짝 씨앗을 심을 수 있으려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이십 대 푸르던 날, 어린 마음에 글쓰기를 꿈꾼 적이 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 절망에서 소망한 것이 그토록 불투명하고 가는 길이 먼 작가였다니 지금 회상해 봐도 어처구니없다. 생각 없는 선택의 결과가 좋을 리 없어 바라던 영문학과에는 입학도 못한 채 좌절했다. 대신 친구의 권유로 선택한 진로의 끝에서 지금의 나를 만나고 있다.

 

글을 읽고 쓰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나 더 이상 작가를 꿈꾸진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독서를 즐기고, 일상을 기록하는 것도 가벼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 수지를 찾은 이유는 조금만 더 잘 쓰고 싶어서였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잘 표현하고 능숙해지기 위한 연습이 필요했고, 연습을 하는 기회를 얻고자 수지를 찾았다. 그런 나를 교수님께서 알아보신 걸까? 그렇다고 새삼스레 등단을 하는 욕심을 가져본 적은 없다. 직업인으로서의 작가가 아니라 이미 일상화되어버린 기록하는 행위에 그저 솔직하게 내 삶을 그려지기를 바란 것이 전부이다. 누가 읽어도 부담 없는 소소한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쓴 글은 아무도 찾지 않는 나의 블로그에 하나씩 저장되어 있다. 아직 이웃도 없고, 댓글을 주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주는 날도 있어 깜짝 놀라기도 한다. 누구라도 와주면 좋다. 글을 읽는 아무라도 ! 좋아.”라는 한마디의 표시로 공감의 하트 한번 눌러주면 최고의 찬사이다.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며칠 전 교수님께서 다시 전화를 주셨다. 엄마 가시고 잘 지내느냐는 안부 연락이었다. 그때도 교수님께서는 여전히 글쓰기를 말씀하셨고, 등단의 기회도 잡으라고 해주셨다. 말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아침마다 짧은 독서를 하고 있다. 지금 보는 책이 목성균 선생님의 누비처네이다. 이 책의 글을 한편씩 읽어나가면서 위대한 수필가란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절절하게 느낀다. 큰 공부가 되고 있다.

 

개꿈을 개꿈으로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다. 어린 날의 꿈을 회상하게 만들어서 일까? 다시 꺼내 볼일 없는 기억의 창고로 그저 흘려보내긴 아쉬운 감도 있다. 코로나 19로 바뀌어버린 일상에서 메모만 해두고 미루어 두었던 글을 다시 정리해 보고 싶다. 지난여름의 여행기도 엄마와의 보물 찾기도 슬슬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202048일 이른 아침에 시작해서 612일 토요일 오전에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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