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공기 빠진 바람인형처럼 마음이 널을 뛴다. 바람이 시간을 왜곡시켜 조각난 기억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날다 지쳐 제멋대로 아무 데나 앉아버릴 것 같다. 드라마 한편이 주는 영향이 어찌 이리 큰지.
드라마 ‘화양연가, 삶이 꽃이 되는 순간’
꽃이 피기 시작하는 대학 캠퍼스에서 지수는 재현을 처음 만난다. 계절과 바람, 날리는 꽃잎들만큼 풋풋하지만 가슴에 새길 꽃보다 아름다운 기억들을 둘 사람의 가슴에 하나씩 쌓아간다. 하지만 불행했던 시대, 사람 그리고 사건들은 그들은 갈라놓는다. 가슴에 묻어 있던 꽃이 되는 기억들로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었던 지수와 재현도 어느새 중년이 되었고, 서로 다른 처지가 되어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다. 추운 겨울, 펑펑 시린 눈발이 날리는 날. 예기치 못했던 장소에서 서로 다른 입장이 되어 우연처럼 필연처럼 다시 만난다.
지수와 재현의 단 1회분 이야기는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그들과 닮은 나의 기억이 꼬물꼬물 거리며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넓기만 했던 캠퍼스.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순수하기만 했던 나, 대학 캠퍼스의 첫 번째 계절. 그 시절의 기억들이 벌떡거리는 바닷물고기처럼 선명하다. 너무 생생한 기억 때문에 어지럽다. 눈을 감는다. 감은 눈 사이로 잊고 있던 장면들이 빛이 되어 새어 나온다..
첫 입학식. 먼지를 싣고 날아온 드센 봄바람이 모처럼 차려입은 나풀거리는 스커트를 날려버린다. 친구랑 둘이 그것을 붙들며 부끄럼인지 아닌지 호들갑을 떨던 중앙도서관 앞, 18살의 소녀들은 소란스럽다.
낯선 사람들 속에 혼자 학식을 먹지 못하는 미숙한 여학생. 굶은 채 통학하다 혼절했던 시내버스, 동대구역 근처 공터의 통학버스 주차장. 미리 온 친구들에게 슬쩍 붙어 새치기도 하는 나, 영원한 후배들의 밥이었던 선배의 회수권을 몽땅 쓰게 만들던 염치없던 우리들. 모두 드라마의 장면과 닮아있다. 중도 식당 한편을 점령군처럼 차지하고 호객 행위를 하던 서클 부대…… 단짝이던 친구는 결국 잘생긴 ROTC 선배의 꼬임에 넘어갔는데, 운동이라곤 완전 젬병이던 나는 왜 하필 ‘테니스반’의 환영회에 가 있었던 것인지 지금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서클룸도 없이 공대 테니스코드가 전부였던 테니스반에서 그를 만났다. 그냥 혼자 꽂혀 버렸다. 신입생에게 대학 4학년은 땅에게 하늘 마냥 먼 거리. 술이나 배가 고프면 친구들을 핑계 삼아 “선배님” “선배님”라고 비음 섞인 목소리는 가능했지만 거리는 멀었다. 당시 남자들은 3학년만 되어도 완전 아저씨였다. 당시 회장이던 공대 3학년 선배는 지금 생각해도 완벽한 시골 아저씨였다. 멀대 같이 키 크고, 섬소년 출신답게 단단한 피부는 거칠고 검었다. 그러나 신입생들에게는 상냥해 한결 같이 히죽대며 웃어 주었다. 그래도 시골 아저씬 아저씨였다. 그런 새까만 피부의 회장 옆에 있던 하얀 피부의 키 작은 도시 청년, 같은 태양 아래 있건만 그는 유독 하얬다. 학교 앞 그들의 자취방에 몰려가 라면도 먹고, 술도 마시고, 기타도 치면서 놀았다. 그가 내 맘에 들어와 이미 왕자님이 되어있는 걸 아는 친구는 단 한 명.. 입이 무거운 그 애는 자신의 비밀처럼 내 얘기를 소문내지 않고 지켜 주었다.
그에 대한 나의 몸짓을 보통 짝사랑이라고 했다. 우리 나이로 19살의 봄에 기타를 치는 하얗고 가는 손을 가진 그를 마음에 담았던 것이다. 운동에 둔한 내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테니스를 가르쳐 주던 그에게 남몰래 직진했다. 매일 일기를 쓰고, 매일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에게는 닿지 않았다. 공부는 하지 않고 틈만 나면 테니스 코트를 얼쩡거렸다. 밥도 꼭 공대 식당에 가서 먹었다. 학과 친구들보다 서클 친구들과 어울렸다. 서클 모임에는 절대 빠지지 않았다. 이유는 언제나 같았다. 그가 보고 싶으니까. 행여라도 그가 있으면 속으로 외쳤다. ‘찾았다. 형’
부모님이 하던 사업이 망했다. 부도를 내고 아버지는 도망을 갔다, 오빠도 나도 휴학을 했다. 오빠는 입대하고 나는 백수가 되었다. 알바와 알바로 날이 이어졌다. 휴학을 하고도 아주 가끔 테니스코트에 얼쩡거리기도 했다. 일부러 친구들 속에 끼여 모른 척 서클 선배들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그와 연극을 보았다. 잔뜩 긴장하고 기가 죽어 말조차 제대로 못하는 소녀가 보인다. 그와 본 연극은 ‘Love Play’.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어느 날, 그가 입대를 한다고 친구가 알려왔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번 멀어진 학교로는 다시 돌아 갈 수 없었다. 그가 어떻게 친구들과 헤어져 입대를 했는지 전려 모른다. 나의 첫사랑이 짝사랑인 채 그에게 전달조차 못하고 끝이 났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당시 나의 처지가 너무 슬펐다. 꽃 같던 순간 나만의 기억들만 일기장에 잔뜩 남긴 채 그렇게 헤어졌다.
드라마 속 지수와 재현의 재회는 그가 나를 다시 찾아주었던 2004년 5월의 기억으로 나풀거리며 데리고 간다. 우리가 처음 선후배로 만났던 캠퍼스에 여전한 그가 서있었다. 여전히 하얗고, 맑게 웃어주는 그가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에서 햇살처럼 빛나고 있었다.
어린 날 한사람에 대한 나의 연모가 그저 일방적인 것이 아님을 다시 만나서 새삼스레 알게 되었고, 그도 역시 오래 나를 그리워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움의 끝에 수소문하여 찾았고 여러 날의 노력 끝에 연락이 닿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로부터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추억을 공유한 채 만남을 이어갔고 어느 날 다시 헤어졌다. 드라마 속 지수와 재현과는 달리.
가끔 미대 앞 나무 아래 벤치에 산책을 핑계 삼아 간다. 5월의 햇살이 부서지던 벤치에서처럼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날은 멀리서 나직한 선배의 음성이 들려오는 착각도 든다.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이다. 작가가 상상한 이야기를 연출자가 시각적인 것으로 바꾸어 우리에게 전달할 뿐이다. 같은 드라마를 본다고 모두 똑같이 느끼지는 않는다. 지수와 재현의 화양연가의 끝에 내게는 소식을 알 수 없는 선배가 있었다. 헤어진 후 가끔 선배의 홈피를 훔쳐보며 드문드문 사진 속에서 모습을 확인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을 확인하면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서로 각자가 소중한 청춘을 들여 만든 지금의 삶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알기에.
어느 날 홈피에서 그가 사라졌다. 항상 거기 있었는데 갑자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정년까진 시간도 남았는데…… 걱정이 됐다. 찾아보아야 할지, 메일을 보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걱정을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나에겐 더 이상 공유하진 않는 내 일상이 있으니까. 나의 화양연가가 선배였다 해도 그건 그저 나의 생각일 뿐인 것을 안다.(2020. 8. 16, 성급하게 마무리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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