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김해를 오가는 길에 청도휴게소에 자주 들린다. 휴게소에 머무는 이유는 늘 비슷하다. 운전으로 굳은 몸을 풀어주고, 화장실에 가고, 진한 커피도 필요하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어디나 비슷한 구조이다. 가장 중심부에 허기를 채워주는 식당이나 간식 코너가 있고, 남녀 화장실이 오른쪽이나 왼쪽 가장자리에 있다. 음료수나 인스턴트 커피 판매기 가까운 곳에 흅연실도 있다. 물론 실외이다. 흡연실도 아닌 그저 흡연이 가능한 공간이다.
하행선 청도휴게소는 여성화장실로 통하는 계단 바로 옆에 흡연공간이 있다. 그곳에는 대개 언제나 비슷한 옷차림의 남성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닮은 자세로 담배를 피운다. 익숙한 풍경이어서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하나 비흡연자들에게 그 길은 다소 불편하다.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흡연의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고개도 돌리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생소했다. 굳이 외면하던 광경에 절로 눈이 갔다. 검은색 후드 티가 아주 잘 어울리는 어린티가 줄줄 새어나는 여성 넷, 곁에 친구로 보이는 역시 어린 남성 하나. 힙합 모자를 쓰고 세련된 선글라스도 착용하고 있다. 모두 앳되어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하얀 셔츠의 오빠, 삼촌, 아저씨들 사이에서 지나치게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곳이 마치 자신들의 거실인 양 편안한 움직임으로 우아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던지면 퐁퐁 물방울이 튈 듯 한 밝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물론 이런 장면이 처음은 아니다.
16년째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0년의 초반에는 그래도 대놓고 담배를 피우는 여학생은 거의 없었다. 국제도시화 된 서울의 여대생은 그렇치 않다고도 들었지만 지방에는 여전히 여학생의 흡연은 살짝 감추고 싶은 비밀의 영역이기도 했다. 특히 어른들에게는... 당시 내가 사용하던 연구실은 뒤편에 낮은 산이 있었다. 산과 건물 사이는 약간의 공터가 있었다. 5층에서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그 공터에는 언제는 흡연하는 여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덜 닿는 곳이 여학생의 흡연장소가 되었던 탓이다. 가끔 그 곳에서 내가 지도하는 학생을 발견하면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청도휴게소의 흡연 장소에서 오늘 본 그들과 대학 건물 뒤 학생들의 모습은 그 사이에 흐르는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크게 달라 보인다. 거침없다거나 당당해졌다거나 거리낌 없다거나 할만한 그런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사각사각 봄비 내리는 날, 부드러운 바람이 연한 풀잎에 스쳐 지나가듯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웠다. 다만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를 내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감이 교차한다.
한편 흡연자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웬만한 건물은 모두 흡연 금지이다. 심지어 화장실이든 베란다이든 자기 명의의 집에서도 생각없이 담배를 피우다간 이웃에게 혼이 난다. 추워도 더워도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곳에서도 느긋하고 편안하게 담배를 피우는 것은 쉽지 않다. 자기 돈주고 카페를 가도 담배를 피우려면 한정된 격리 공간으로 쫓겨 가야한다. 비흡연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지경에 무슨 배짱으로 담배를 피우는지 하는 생각도 든다. 건강에도 나쁘고, 담배값도 꽤 비싼데 저렇게 비싼 값을 물면서 왜 피우나 싶다. 쓸데없는 고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성 성인들의 흡연율은 점차 감소한다는데 어린 여성들의 흡연율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안타깝다. 이런 와중에 휴게소에서 잠시 만났던 아이들의 흡연 광경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워 나도 모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담배는 이제 누구라도 선택할 수 있는 기호품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흡연을 선택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기위한 장소 선택에 자유가 없어지고 하물며 비흡연자의 눈치까지도 봐야 한다는 사실을 함께 선택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유야 무엇이든 젊은 여성들이 흡연의 길을 선택하는 것에 이런 불편을 기꺼이 지고 가겠다는 당당함과 용감함이 있는 것이다. 그런 선택을 하는 젊음이 부럽다.
청도휴게소를 뒤로 하고 차는 떠났다. 하지만 이상하게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마는 아침이었다.
(2020년 10월 1일 마무리)
'이런저런~~ > 나의 언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walking, again. (0) | 2021.03.13 |
---|---|
2020 추석 그리고 나훈아 (0) | 2020.10.08 |
'화양연화'의 기억 (0) | 2020.08.17 |
코로나 바이러스 19 (0) | 2020.06.20 |
개꿈 이야기 (0) | 2020.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