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나의 언어

2020 추석 그리고 나훈아

Jeeum 2020. 10. 8. 16:29

2020년 코로나19는 우리들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마스크 착용이 나와 모두의 생명을 지키는 길이라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힘든 길을 마다않고 고향으로 달려가는 추석 명절의 귀성 행렬이 사라졌다. 기차를 이용한 귀성객이 예년의 절반으로 감소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특이한 추석 명절을 보냈다. 예년 같았으면 주말을 끼고 적어도 5일을 쉴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 고향을 찾는 것은 물론 누군가는 먼 여행을 가기도 했을 것이다. 엄청나게 증가한 여행객들로 공항이나 기차역이 북적거린다는 명절 뉴스도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불과 1년전 까지는. 그러나 2020년 우리 모두는 희한한 추석을 겪었다. 부모님을 뵈러 가는 사람도 줄었다. 시골집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일 년에 단 두 번 대규모의 이동은 피붙이와의 만남을 위한 것이지만 올해는 만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대신 한 대형 가수의 노개런티 언텍트 공연만 화제가 되었다. 나훈아의 KBS 공연이 그것이다.

 

긴 추석 연휴가 나훈아로 시작해서 나훈아로 끝이 났다. 적어는 나는 그런 기분이다. 추석 전날 방영된 그의 공연은 눈과 귀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다. 형제들이 모인 추석 차례상 앞에서도 나훈아의 말과 공연이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그의 노래나 말이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저 드는 생각을 정리해 본다.

 

무슨 일을 하던 한 개인의 삶에서 오랜 시간 한 가지에 몰입한 사람이 갖는 성과나 결과는 모두 특별하다. 긴 세월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살았던 나훈아는 자신을 꿈꾸는 사람이라 정의했다. 스스로 악기를 연주하고 곡을 쓰기도 하는데 노래 가사가 사람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하는 매력이 있다. 아주 평범한 어휘들이 모여 있을 뿐인데 듣고 보면 사람들의 결핍된 감성을 자극한다. 평소 듣기를 원했던 말, 하고 싶던 말을 어찌 그리 잘 알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듣고자 수많은 사람들을 공연장을 찾는가 싶다.

 

이번 공연에서 노래 사이사이에 그가 한 발언들은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평소 전통가요를 무시하고 모르던 사람들에게 그가 오랫동안 빛나는 별이었음을 각인시켜 주었다. 윤동주의 별과는 다르지만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또 하나의 별. 스스로 별이 되어 엄마를 그리워하고,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은근한 제스쳐에 실어 전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한가위 추석명절동안 보름달보다 보름달의 강한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별을 찾아보았다. 거기에 그를 닮은 별이 있었다. 역시 스타이다.

 

그는 경상도 부산 초량에서 태어났다고 주소까지 줄줄 말해주었다. 고향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했다. 그 사투리를 행여 시청자들이 못 알아들을까 방송국에서는 자막으로 번역까지 해주었다. 웃을 수밖에 없다.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실은 그의 언어는 매우 직설적이다. 별의별꼴을 다보고 살고 있다고 하면서 이 시대의 지도자들에게 위정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날린다. 눈앞의 삶에 전전긍긍하느라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민초들에게도 당신들이 주인이라고 뼈 있는 말을 마구 한다. 그러나 그게 공연을 위해 일부러 지어낸 말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 속에 원래 있던 말을 툭툭 내뱉는 것 같았다. 대중 공연임에도 전혀 필터를 거치지 않는 말이지만 그래서 더욱 위선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소 거칠지만 솔직하고 시원하다. 잠시지만 가슴에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역시 그는 매력적인 꼰대이다.

 

이번 공연에서 내 가슴에 가장 깊이 남은 곡은 이다. 곡의 가사를 보자.

 

살다보면 알게 돼. 일러주지 않아도

너나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같이 사는지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갈 세상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 처럼

살다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게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단 것을

띠리 띠리띠리리리 띠 띠리띠 띠리

띠리 띠리띠리리리 띠 리띠리 띠디디

 

살다보면 알게 돼. 알고 싶지 않아도

너나나나 모두 다 미련하다는 것을

살다보면 알게돼. 알면 이미 늦어도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잠시 스쳐가는 청춘 훌쩍 가버린 세월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 처럼

살다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였다는 것을

모두 꿈이였다는 것을

 

 

이 곡이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가 나이 때문인지, 외로움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줄어드는 때가 되니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하는 동안 저절로 삶의 모습이 바뀌고, 부모님은 곁을 떠나고, 일상이었던 일에서도 이제 내려와야 할 때가 되었구나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청춘일 때는 그저 청춘이 계속 될 줄 알고 살았고, 좀 더 많은 연봉과 좀 더 나은 직장과 좀 더 좋은 자동차나 집이 목표였지만 지금은 그것들이 목표가 아니라 그저 과정이라는 것을 약간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굳이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살기보다 시간의 모가지를 비틀어 잡으며 살아가야 하고, 그 속을 꼬닥꼬닥 뚜벅뚜벅 걷는 것도 어려운 일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그저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 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래를 부른 가수처럼 아직 때가 되지 못했을까? 나는 아직도 삶의 과정을 좀 더 즐기고 싶다. 영영 오지 않을 임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손에 넣지 못한 무언가를 위해 좀더 악착을 떨어보고 싶기도 하다. 어차피 그런 게 인생이라면 잠시 머무를지언정 우아하고 존재감 있게 머무르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꿈꾸는 남자, 가수 나훈아다음 공연은 직관하기로 지인들과 결정했다. 공연의 표를 얻는데 알바생이 필요하다면 알바생을 쓰고, 공연의 장소가 그 어디라도 가보기로 맘먹었다. 추석이 지나고 한주일이 가고 있건만 여전히 이상한 시간이 계속된다. 그에게 관심 없던 김해 작은 마을의 아줌마들로 하여금 가수 나훈아의 노래를 계속 듣게 만들어 버렸다.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2020. 10. 08)

'이런저런~~ > 나의 언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할머니  (0) 2021.03.13
walking, again.  (0) 2021.03.13
2020 흡연 감상  (0) 2020.10.01
'화양연화'의 기억  (0) 2020.08.17
코로나 바이러스 19  (0) 2020.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