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세탁한 옷들을 서둘러 걷어서 소파에 앉았다. 엄마가 오랫동안 입고 지냈던 계절 점퍼를 입어 볼 요량으로 세탁해 널어 두었다. 게으른 눈빛이 닿는 곳에 놓아둔 액자에 엄마의 얼굴이 비친다. 둔하지만 주먹만 한 아련한 감정이 가슴을 두드린다. 점퍼에 얼굴을 묻었더니 친숙한 냄새가 배어 나온다. 세탁세제로 빨아 몇 번이고 헹군 다음, 봄 햇살로 이틀 동안이나 말렸건만 어찌 여전히 엄마의 냄새가 나는 것일까? 역시 사람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엄마 곁에 누워 꼬옥 안으면 코끝으로 깊게 전해오던 그것이다. 가끔은 등을 토닥토닥 어루만져주기도 했다. 여전히 나를 어린 아이로 생각하는 듯 자장가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반짝이던 눈동자가 초점없이 멍해지면 누구냐고 밀어내기도 했고, 가끔 때리기도 했다. 그렇게 오래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엄마는 해가 바뀐 지 며칠 만에 갑자기 길을 가셨다. 인간의 운명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지만 역시 그런 것 같았다.
엄마가 떠난 공간에 봄바람이 불어오더니 이제는 그 바람에 조금씩 더운 공기가 묻어 나온다. 이것저것 해달라는 엄마가 없으니 시간이 남아돌아 몸이 게을러졌다. 게으름을 핑계 삼아 엄마의 물건을 그대로 두었다. 시간이 빌 때마다 하나씩 꺼내보리라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그리움에 울음이 터진다고 해도 그 정도의 슬픔도 없는 이별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핑계 삼아 실컷 울려고 두었다. 가끔 나를 너무 바쁘고 당황스럽게 만들던 엄마지만 역시 곁에 있을 때가 더 좋았다. 엄마와 살던 집에는 엄마가 없는 대신 엄마의 물건과 그 물건 속에 감추어진 이야기가 같이한 시간보다 더 큰 향기로 숨어있다.
노래방에서 엄마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집에서도 거의 없었다. 엄마가 가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마음이 힘들 때 많이 흥얼거리기도 했다. 어찌 아니 그렇겠는가?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남남이나 다를 바 없는 남자하나 믿고 먼 타지로 떠나와서 삼 남매를 낳고 키울 때 어찌 힘든 날이 없었으랴? 하고픈 대로 하면서 사는 남편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살면서 어찌 마음에 응어리가 없었으랴? 여성으로 태어나서 터질 듯한 바람 같은 연정이 솟아나는 계절을 얼마나 보냈을까? 그 때마다 엄마는 어떻게 그것을 해소하고 살았는지 제대로 알 길이 없다. 엄마가 제대로 부르는 노래를 들은 적 없는 우리 형제들은 억지로 엄마에게 노래를 시키지도 않았다. 가끔 가족 모두가 가는 노래방에서 엄마는 늘 어여쁜 모습으로 소박하게 손뼉을 치는 것이 모두였다.
어느 날, 주간보호센터 원장님은 연락을 주셨다. “이호삼 여사님, 완전 ‘가수’에요”라고 한다. 설마 그럴 리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했더니 한 번은 영상을 찍어 보내주었다. 센터의 어르신들이 크게 빙 둘러앉아 마이크를 돌려가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먼저 부를 사람을 찾아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엄마가 손을 번쩍 들고 손수 마이크를 잡고 시키지도 않는 노래를 선창 했다. 노래뿐만 아니라 어깨를 덩실덩실 움직이며 춤도 추었다. 어머나 이럴 수가. 건강했던 시절의 엄마에게선 전혀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 낯설었다. 엄마가 부르는 노래는 ‘비 내리는 고모령’. 박자는 엉망이지만 소녀 같은 목소리로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무척 행복한 모습이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 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그 영상을 보고 나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치매가 인간의 허울을 벗겨내고 나니 비로소 속살 같은 진짜 모습이 나타나는 듯했다. 이렇게 흥도 많고, 잘도 흔들어대는 끼 많은 여자였다니. 아무리 자식이어도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다.
‘미스터트롯’ 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엄청난 히트를 쳤다. 트롯 가요를 맛있고 멋있게 부르는 일곱 명의 젊은 남자 가수들이 TV에 자주 나온다. 가장 나이가 어린 동원이가 ‘보리고개’를 부른다. 이 아이가 부르는 노래는 늘 엄마를 내게 데리고 온다. 엄마도 보리고개를 직접 겪은 세대였다. 그렇게 배고팠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인지 치매에 걸린 엄마도 보리고개를 기억하고 있었다. 언젠가 엄마에게 그 힘들었던 시절의 얘기를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옷을 잘 입는 것도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도 중요한 삶의 질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냥 입고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을 잘 나타내고 멋있게 표현하기 위해 옷을 성실하게 꼼꼼하게 고르고 입는다. 노래나 춤, 요가에 그림 등 하고자 하는 것도 하는 것도 매우 다양해졌다. 그래서 코로나19 사태 속에 한동안 집 안에만 있어야 했는 사람들이 코로나가 잠시 주춤거리자 여기저기 밖으로 터져 나왔다. 움츠리고 삼갔던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누리려다 오히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는 것은 이런 것이다. 바이러스가 생명을 위협한다고 해도 하고 싶은 것은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엄마에게 있어 옷이나 노래는 그런 사치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뭐든 자식 먼저 챙기느라 늘 제대로 된 외출복이 별로 없었다. 아픈 엄마가 주간보호센터를 매일 가야했을 때 입고 외출할 옷이 없다는 사실을 겨우 알았다. 오빠와 나는 부지런히 옷을 사서 날랐다. 오늘 엄마를 생각나게 한 점퍼도 오빠와 함께 산 것이다. 엄마가 곱게 보였으면 해서 귤빛 점퍼를 골랐다. 거기에 어울리는 신발과 모자를 같이 샀었다. 바로 그 때의 옷이다. 거기에 엄마의 향기가 묻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중요한 기억이 있다. 오래 시간 함께한 공간이기에 엄마와 관련된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을 수 밖에 없다. 나는 보물찾기 하듯 그것들을 찾아보려 한다. 오늘 엄마의 옷 속에서 첫 번째 보물을 찾았다. 엄마의 향기이다. 아마 이 옷뿐만 아닐 것이다. 신장 속에 얌전히 자리한 신발들 가운데, 포실포실 겨울 털모자 속에, 부드러운 목도리 속에, 마지막으로 담군 간장이 들어 있는 독 안에, 삐뚤빼뚤 엄마의 글씨 속 여기저기에 엄마의 흔적이 켜켜이 숨어있을 것이다. 죽은 사람의 물건 찾기를 재미 삼아하는 것이 이상한 것일까? 나는 여전히 건강한 마음을 갖고 있으니 전혀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한 세대가 한세대의 역사를 똑같이 밟아가면서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무엇이 이상하랴? 내 엄마인 것을~. (2020. 6. 11. 오후 마무리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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