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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윤 독후감

Jeeum 2020. 10. 29. 11:23

김영하(2000)여행의 이유를 읽고 ;

호모 비아토르에게‘신뢰와 환대를 줘야하는 이유

 

 

사람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여행조차 조심스러운 지금. 여행을 하지 않으면 몸살이 나는 사람들도 때때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나 여행에 대해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모두 한결같이 집이 아닌 바깥을 그리워하고, 여행의 소중함을 간절하게 느끼고 있다.

 

소설가 김영하의여행의 이유는 작가가 그동안 여행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아홉 가지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여행에 관한 산문집에 흔히 등장하는 여행지나 여행 자체에 관한 소개나 안내는 거의 없다. 반면, 길고 짧게 다양한 곳을 여행한 작가가 여행이란 경험을 통해 했던 생각과 인간의 행위로써 여행에 대해 지향하는 가치를 무엇인지를 전해주고 있다. 더욱이 소설가라는 직업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여행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잔잔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여행의 이유를 읽고 나서 나는, 내게 있어 여행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이번 학기 수강하고 있는 한 강좌에서 <과제가 아닌 과제>를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이 다녀온 재밌었던 여행과 그 여행을 위해 했던 활동에 대해 정리해보라는 과제였다. 과제의 목적은현대인의 여행 행태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온라인 강의였지만 교수님께서는 일부 학생들에게 제출한 과제의 내용을 요약하여 발표하도록 시켰다. 학우들이 발표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친구들의 발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여행에 대한 서로 다른정의였다. 누군가는 오직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멀고먼 영국까지 기꺼이 날아간 것을여행이라고 했고, 또 어떤 친구는 자신이 이사 간 동네를 알아보기 위해 전동 킥보드를 타고 돌아다닌 것을여행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이렇듯 사람이 생각하는 여행은 그 정의도 모습도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것이다. 더불어 누군가 자신의 침대 위에 혼자 앉아 노트북을 통해 여행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것도 완전한 여행(이런 걸 우리는 흔히방구석 여행이라 부른다.)인 것이다.

 

또한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내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낯선 서울에서 생활하는 것, 학업이나 생활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하나씩 서울을 경험해가는 것 역시서울 여행이며, 나는서울 여행자인 것이다. 수학여행이나 가족여행은 많이 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서울이란 한 지역에 머무르면서 혼자 생활하게 된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던 그 날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같은 대한민국이고, 말도 통하는 사람들임에도 그 날의 서울이 얼마나 낯설게 느껴지던지.

 

서울에 온 첫 해에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어디서 오셨어요?’였다. 이것은 외국인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가 가장 흔히 하는 질문 ‘Where are you from?’ 이다. 말의 시작과 끝에 사투리의 억양이 듬뿍 녹아있는 내가 입을 열자마자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던졌다. 그제야 나는 “아,, 저는 대구에서 왔어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관심의 표현으로 질문을 했겠지만 왠지 나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말이었다.

 

여행의 이유에서 작가는 여행자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타인의 신뢰와 환대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게 던져진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과 반복적으로 쏟아졌던 시선은신뢰와 환대가 아니었으며, 표준어를 쓰는 그들과 사투리를 쓰는 나 사이의거리 두기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어느 날, 왕십리역에서 다른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처음 왕십리역에 가본 날이었다. 왕십리역 10번 출구를 찾아 걷고 있는데 나이 많은 어르신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기 왕십리 이마트 어느 쪽으로 가면 돼요?”

 

질문을 받고 나도 모르게 “저“ 여기 사람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다.‘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을 받고 속상했던 경험 탓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마치 외국인처럼 대답을 해버린 것이다. 기분이 아주 이상했고 아이러니한 상황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계속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을 듣더라도 ‘서울‘ 여행자로서의 내 삶은 그다지 나쁘진 않다. 서울 시민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공간인 한강이나 석촌 호수를 걷는 것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도 가보지 못한 많은 서울이 남아있고, 꼭 가보고 싶은 서울의 조각들도 여전히 많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여행자’인여행자’인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여행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지금 느끼고 경험하는 서울에서의 삶을 나의 색깔대로 즐기고, 이를 통해 내가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면 이것으로 하나의 여행이 완성되지 않을까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의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바뀌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인내와 고생이 끝나는 날, 모든 사람들이 박차고 일어나 어디로든 떠나려 할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호모 비아토 르(Homo Viator), 우리는 모두 낯선 곳으로 여행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