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와 <강아지똥>으로 유명한 권정생 작가님의 동화.
권정생 (2011), 슬픈 나막신, 우리교육.
한적하다 못해 적막했던 그 날 도서관에서 이리저리 눈에 익은 이름을 훑어보다가 <몽실언니> 옆에 꽂힌 이 책을 무심히 들고 나왔다.
첫 출판은 2002년이고, 작가는 2007년 돌아가셨다. 내가 읽은 것은 2011년에 재판된 책이다.
내용은 1937년생 작가가 고향인 도쿄 시부야에서 전쟁의 막바지까지 겪었던 유년 시절의 이야기다. 전쟁 속에서 소리 없이 살았던 혼마치 나가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준이, 하나코, 에이코, 분이, 미즈코와 친구 그리고 언니 형제의 이야기이다. 그 시절 이들의 삶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피폐하고, 굶주리고, 어렵다.
국적과 관련 없이 당시에도 이들 또래의 일상은 지금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친구를 좋아하고, 질투하고,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지만, 비밀이 친구들의 수다가 되어버려 마음이 상하고, 미워했다가 다시 울며 친구가 된다. 호기심에 걸어서 멀리 다른 동네(신주쿠)까지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린다. 늘 같이 논다. 그림연극을 같이보고, 고철도 함께 주우러 다닌다. 학교도 같이 간다. 방공호에 숨으러 갈 때도 같이 간다.
일본이 전쟁에 항복을 할 즈음인가. 8월의 여름. 거대한 폭격을 맞은 나가야는 불길 속에 휩싸인다. 비가 내린다. 형을 징용으로 전쟁터에 보낸 준이와 용이는 일본이 질 거라고 기대하고, 하나꼬와 미즈코는 일본이 이겨야 다시 평화로울 거라고 생각한다. 모두 전쟁에 대한 어른들의 생각이다. 어른들의 생각이 아이들의 살 속으로 생각 속으로 들어와 결국 편을 가르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생각한다. 모두 지루하고 고달픈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전쟁이 끝나면 부모님도 언니도 돌아오고, 헤어진 동생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들의 꿈이다. 그 꿈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며 까까머리 인형을 만들어 걸어둔다. 골목마다 데루데루 보짱이 늘어가고 전쟁이 그치기를 기다린다. 어른들은 편을 가르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어느 편인지도 모른다. 그저 힘든 지금이 끝나기를 기도할 뿐이다.
서문에서 작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너무 이쁘게만 써서 오히려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미 그 시절을 뚫고 지나온 어른이 된 작가가 보기에 충분히 그런 문장일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시 아이들의 실제 모습이 그랬던 것은 아닐까? 작가의 경험이 자신도 모르게 뇌 속에 마음속에 그렇게 새겨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 친구들은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