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58. 천하무적 삼남매

Jeeum 2021. 10. 10. 09:50

김자미 동시집(2021). 천하무적 삼남매, 브로콜리숲.

 

"엄마, 새 책 안 나오니?" 물었더니 곧 나온다고 했다. 기다리던 책이 왔다. 시인의 이번 책 제목은 '천하무적 삼남매' 책을 주며 진이는 노란 옷을 입은 것이 자신이라고 했다. 닮았다. 머리의 스타일이나 몸매의 날렵함이 닮았다. 요즘 진이가 보여주는 성숙이 쭉 뻗은 오른쪽 손가락에 자신감으로 담겨있는 것 같았다.  

 

시어의 세계는 언제나 놀라움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흉내조차 내기 힘든 시어의 세계를 동경한다. '달복이는 힘이 세다'도 그랬고 '여우들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랬다. '천하무적 삼남매'에서도 그럴 것이다. 두근거리며 이른 아침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이미 다 커버린 남매를 보며 시인은 자신이 기억하는 아이들의 시간을 그려보고 싶었나 보다. 시인의 마음에서는 여전히 아이들로 존재하는 자식들의 시간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일 테니. 살면서 화가 나고 우울할 때. 시인인 엄마는 아직도 아이들의 시간을 영양 제삼아 생기를 찾곤 하나 보다. 맏딸의 고단한 마음, 둘째의 투덜투덜 어리광, 한숨을 닮은 막내의 하소연. 그렇지만 셋이 있으면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오 형제'만큼이나 천하무적일 거라는 엄마의 바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시들. 새벽부터 소리 내어 읽는다. 시는 역시 소리 내어 읽어야 맛있다. 

 


목련꽃이 피었다고

 

일요일 아침

망쳤다

 

참새 녀석들

맛 좀 봐라

 

물 한 바지 들고

창문을 열었는데

 

목 련 꽃 이 환 하 다!


시계 속에 갇힌 시간

 

시간이

시계 속에 갇히기 전에는 말야

 

가고 싶을 때 가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좋은 일 있으면 천천히

바쁜 일 있으면 후딱

 

아주아주 자유로웠대

 

사람들이 시계 속에 

시간을 가둬 길들이고부터는 말야

 

바쁘다 바빠

쉼 없이 

 

아주아주 힘들게 산대.

 


맞아. 진짜.

내가 내 시간을 시계 속에 가두고야 말았구나.

시인은 가둔 시간 속에 살지 않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깊고 깊은 상자 속

 

화가 난 엄마

머리에서 김이 나면

얼른 깊고 깊은 상자를

갖다 놓으면 돼

속이 다 타버리기 전에

풍덩 뛰어들 테니까

사각티슈를 오리발처럼 신고

내가 처음 쓴 카드를 수경처럼 끼고

방긋 웃는 내 사진을 산소탱크처럼 차고

상자 속을 헤엄치다 보면

산소방울처럼 눈물이 솟구치다가

해파리처럼 웃음을 터트릴거야

 

그러다 한 시간쯤 지나면

깊고 깊은 상자 속에서 건져 올린

갈비찜을 식탁에 차려놓고

부를거야.

 

밥 먹자! 

 


한편이라도 제대로 외우면 좋겠는데 그러질 못한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열리는 시를 그저 간직해 둘뿐이다. 시집을 가까이 두었다가 다시 어느 날 손길이 닿을 때 그때는 그때대로 새로운 낱말에, 그리고 문장에 다른 빛깔의 마음이 열릴 것이다. 엄마가 진이에게 하는 말로 마무리한다.

 

 

내가 나에게

 

느끼고 싶을 대로 느껴

눈치보지 말고

 

원하는 걸 원해도 돼

물어보지 말고

 

해보고 싶은 거 다해

실수 걱정 말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니까

 

내가

다 허락할께

 


 

내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보라색 꽃을 샀다. 엄마 사진 앞에 두었다. 엄마가 보고 기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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