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2016). 아무도 아닌, 문동.
2023-28
아무도 아닌, 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 으로 읽는다. (작가의 말)
황정은 소설집. 이제 두편 읽는다. <상행>>, <양의 미래>
그녀의 글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정은 작가의 문장에서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을 받는다. '조용조용, 자근자근 씹어대는 치열함' 얼핏 힘이 빠진 듯, 무기력한 듯 보이지만 강인한 무엇.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유리 너머에 있었다. 햇빛은 하루중 가장 강할때에만 계단을 다 내려왔다. 유리를 경계로 바깥은 양지, 실내는 어디까지나 음지였다. 수많은 형광등 불빛으로 서점은 좀 지나치다 할 정도로 밝았으나 조도가 질적으로 달랐다. 나는 뭐랄까. 창백하게 눈을 소는 빛 속에서 핵빛을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의 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후에, 유리를 통해 노랗게 달아오르고 있는 계단을 바라보다가 저 햇빛을 내 피부로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하루중에 채 삼십분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햇빛이 가장 좋은 순간에도 나는 여기 머물고 시간은 그런 방식으로 다 갈 것이다. 다시는 연애는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회를 더는 상상할 수 없었다.(양의 미래, 48쪽)'
출장 덕분에 읽기를 마친다. 기차여행과 책은 잘 어울렸다. 특히 코로나 상황이 종료되어 창쪽에 누군가 앉게 되면 통로쪽에 앉아 창밖을 즐길 수 없다. 시선이 밖을 갖지 못하면 안으로 파고든다. 그럴 땐 책이 가장 좋은 친구다. 책은 또다른 세상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나를 잃어버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잊어버려야 살 수 있는 순간을 건너 건너 살아왔다. 사실이다. 하지만 잊어 버릴 수도 없이 매을 나를 잃어버려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얘기들이 책 속에 모여있다. 가끔 답답하다. 가끔 처량하다. 가끔 외면하고 싶어진다.
작가의 얘기는 온몸에 힘을 빠지게 하면서 소곤거린다. 그녀의 소근거리는 말들은 애써야 들린다. 애쓰며 읽다보면 힘이 든다. 그래서 짧은 소설이지만 계속해서 읽기는 힘들다.
거기에 내가 지금도 힘겹게 걷고 있다는 생각이 있다. 그걸 잊어버리고 싶다. 책을 읽으면 잊고 싶은 그것이 나를찌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의 문장은 읽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하기 떄문일까. 잊어서는 안되는 일들을 안고 우리는 잃어버려야 살 수 있는 세상에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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