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73
구병모(2025). 절창, 문학동네.
12/29~
상처를 읽는다. 피투성이의 상처, 인체의 갈라진 틈으로 사람을 읽는다. 사람의 마음을 생각을 읽는다. 기발한 소재이다. 쐐(애)한 느낌이 들지만 소설로서 읽는 재미는 있다.
2025년의 마지막 소설이 될 듯하다.
알고 싶다. 알기 위해서 읽는다. 우린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어떻게 무엇으로 읽어야 하는가? 읽는다면 알기는 알게되는 걸까? 사람을 알고 싶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은 무엇으로 읽을 수 있을까? 그건 언어화된 것일까? 그저 관념일까? 찢겨나간 상처를 고통을 만들것이니 그 고통 넘어 존재하는 생각이나 마음은 어떤 것들이 남을까? 그 때 남은 것들이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투덜대고 있다고 한들 나는 모르는 거여. 그러니 누군가를 읽는 유일한 통로가 그의 피부도 소지품도 아닌 상처라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겠지. 매개가 상처라니, 그 어린 나이에 그 한번의 일로 어떻게 상상이나 하겠냐고 매개의 유무와 무관하게 누군가를 읽는다는 게 현실에서 보편적인 일은 아니니까.(91쪽)
말은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때론 감동을 주기도 하나 많은 경우 왜곡과 착오를 전파하는 도구이기도 하다고. 내가 뱉은 말은 잘못된 인식 쪽으로 무한히 흘러가버렸어. 원래 말이라는 게 제 몸 밖으로 나올수록 구차해지고 빈약해지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내가 말하기에 소질이 없어서 제대로 활용을 못하는 걸까. 말이 원래 그런 거라면 언제까지고 의미에 그리고 본질에 닿지 못하는 거겠네. 한 사람이 가진 말의 기능이 이토록 부실하고 극단적인데 나는 타인의 생각을 읽을 줄 안들 무슨 소용이 있나. 어차피 그것을 표현하려면 말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인간은 뭐하러 입을 여나. 침묵하고 살지...... 같은 자잘한 생각이 머리에 번져 나갔지만 일단 그때는 수습이 안되는 것 같은 당혹감뿐이었어.(188~190쪽)
사람은 보통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이끌리는 한편으로 자신보다 상태가 안좋은 사람을 보며 그래도 나는 저 지경까진 아니지. 따위의 비열한 위안을 받는 존재니까. 등장인물들이 터무니없는 말과 행위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때, 우리는 그를 반면교사로 삼게도 되지. 인물은 사력을 다해 얼빠진 짓을 함으로써 우리를 기함시키고, 때론 참괴의 감정을 느끼게도 해. 그런데 너는 앞으로 새상에서 이보다 더한 사람들을 숱하게 만나게 될테고. 한 명의 사람을 한 권의 책 대하듯 다 각도로 읽어야 인생이라는 이름의 위기를 그나마 덜 고통스럽게 감당할 수 있을 거란다.(301쪽)
한 권의 책을 펼칠 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세상의 코어를 이루는 것이 반드시 희망 내지 사랑만은 아니며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인간들과 혹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나 자신과 필연적으로 상종하거나 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자 태초부터 운명지어진 비극이라는 사실이지. (중략)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하늘과 땅 같은 자연은 그냥 존재할 뿐이지 딱히 어진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인간 따위 만물의 입장에서는 짚으로 엮은 개만도 못하다는 뜻이야. 그러니 너의 눈 앞에 있는 소설은 그 무의미의 운명에 어떻게든 의미 비슷한 걸 부여해보고 죽으려던 예술가들의 오랜 싸움과 필연적인 패배의 흔적이야.(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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