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9. 정이현(2006), 달콤한 나의 도시

Jeeum 2021. 2. 11. 18:38

정이현(2006). 달콤한 나의 도시, 문학과 지성사.

 

'정이현' 작가를 몰랐다. 이렇게 많은 소설을 생산하였음에도~~

김민철의 책에서 발견하고, 도서관에 있는 6권의 그녀 책을 빌렸다.

그 중 가장 먼저 쓰인 책이

<달콤한 나의 도시>이다.

 

32살 오은수, 유희, 재인의 이야기

그리고 이들의 남자들

서른즈음을 통과하는 21세기 초의 여성들의 삶(직업), 사랑, 가족 그리고 선택에 관한 이야기

 


 

통화연결음으로 어떤 음악을 깔아 두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성향이 대번에 드러난다. 최신가요만을 골라 이틀이 멀다 하고 바꾸는 사람에게는 첨단 유행에 대한 강박이 느껴지고, 처연한 클래식 연주곡만을 고수하는 사람에게서는 일말의 허영이 묻어난다. 컬러링 설정을 하지 않고 따르릉 소리를 그냥 놔둔 사람은 게으르거나 무심하거나 소심한 사람일 것이다.(74쪽)


 

이런 문장을 보면 '오싹'한다. 나는 어느 쪽일까? 그녀는 어느 쪽일까? 게으른 쪽일까? 무심한 쪽일까? 소심한 사람인 걸까? 32살의 여성은 예민하다.

 

30대 여성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일은 무척 흥미롭다. 이 책 재밌다. '오은수' 흥미롭다 마치 '마스다 미리'의 그림에 오은수와 그녀의 친구들을 넣어 다시 그렸으면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미 2008년 SBS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드라마는 보지 못했으니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알 수 없다. 공중파에 자유연애의 격렬한 러브신을 힘껏 넣을 수는 없었을테니 한국한 SNTC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맞선에서, 평점 80점 이상의 남자와 조우하는 일은 지구와 혜성이 충돌한 가능성보다 희박하다. 내가 그에게 강렬한 이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79쪽)


그렇게 맞선에서 운명이라고 느낀 남자와 결혼해서 사는 것이 그 여자의 운명이라면, 운명의 남자에게 이미 다른 여자가 있어 그 남자는 그녀를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결혼을 했다는 것은 역시 그 놈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말고 다른 의미는 없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 인간의 힘으로 이해 못할 인간의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이틀만 지나면 나는 서른두 살이 된다. 고작 서른둘이다. 얼마나 더 살아야. 불쑥불쑥 들이닥치는 생의 불가사의에 대해 의연하게 찡긋 윙크해불 수 있을까?(146쪽)


얘들아. 내가 지나와봐서 조금 아는데...... 아마 40대가 되어도 안될걸!! 재수없지? 의연해지는 게 아니고 무뎌지는거야. 그것도 스스로...... 조금더 우아하게 무뎌지는 것이 그래도 조금 나을거야. 더 재수없지?

 

너도 이십대를 통과해 왔으니 알거 아니냐말이다.

 


시간에는 매듭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한하게 지속되는 그 반복성이 두려워 자꾸만 시간을 인위적으로 나누고 구별짓고 싶어 한다. 아아. 그렇게 해서라도 복잡한 현재를 꺠끗이 털어버리고 맑은 새날을 맞이할 수 만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맨발로 폴짝폴짝 뛰어 내일을 마중 나가겠다. (148쪽)

 


매일이 그날그날 같은데 흘러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이제 그 반복성이 두려운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시간의 매듭을 잘 지어야 하는 것은 30대나 50대나 마찬가지이다. 내게도 잘 짓고 싶은 매듭이 발등으로 떨어졌다. 노력을 하겠지만 잘 될지는 모르겠다.

 


이력서라는 단어를 한자의 뜻 그대로 풀면 '신발의 역사를 담은 종이'쯤 되려나? 출생, 입학, 졸업, 입사, 퇴사로 이어지는 한 인간의 인생 여정. 그 여정이란 그동안 신발로 꾹꾹 밟고 지나온 길을 의미할 터이니 어쩌면 참 무서운 표현이었다. 오늘 내가 신고 나온 것은 아무런 무늬가 없는 7cm 굽 검정 하이힐이다.(332쪽)

 


"잘 생각해봐. 넌 항상 안정된 관계를 꿈꾸는데 그게 안 된다고 불평하잖아. 근데 그 이유는 남자들이 저마다 하나씩 결격사유가 있기 떄문이지? 태오는 스위트하지만 장래성이 없고, 또 영숬키는 부족한 게 없어 보이지만 사실 결정적인 매력 한방이 없고."

어쩐지 반박할 수 없는 분석이었다.

"넌 그 남자들 단점은 다 버리고 장점만 뽑아서 하나로 모으고 싶지? 근데 사랑은 그런 게 아니지 않냐? 진짜 사랑한다면 망설이지 않을걸. 절실하게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들 쭉 늘어놓고 문방구에서 연필 고르듯 하는 거, 난 너무 비윤리적이라고 봐."

속사포처럼 다다다 쏘아붙이는 유희의 공격을 웬만하면 참으려 했는데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329쪽) 

 


눈을 뜨니 어제와 다른 내일이 펼쳐졌다. 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않은가. 그 전말과 완전히 다른 내일이란 어디에도 없다는 체념을 받아들이면서 사람은 나이를 먹어간가. 결론적으로 간밤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358쪽)

 


" (전략) 연애란 게 결국엔 이 거친 세상에서 마음 붙일 데를 찾는 거 아니겠어? 체온을 나누고 싶고 기대고 싶고 소통하고 싶고, 지향점이 같다면 몸이 좀 앞서 나가는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데?"(1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