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일요일
작년 겨울 심었던 양파를 거둬들였다. 두 줄의 두둑에 심은 양파는 초보 주인의 어설픈 돌봄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힘으로 자라서 또 다른 수확의 기쁨을 내게 주었다.
작년 겨울 어느날, 나는 그저 파를 사서 심어 볼 요량으로 번개시장에 들렀다. 시장을 어슬렁거리다 물어보지도 않고 쪽파라고 생각하고 파를 샀다. 그것이 파가 아니라 양파 모종임을 알려 준 것은 옆 밭의 미자 언니였다. 내가 밭에 도착했을 때 언니는 양파를 심고 있었고, 무엇을 사 왔느냐고 물어서 파라고 보여주었더니 웃으며 파가 아니라 양파 모종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언니가 심고 있는 것을 보고 그저 흉내 내어 심었을 뿐이다. 나는 그 정도로 우리들이 먹고사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뽀시래기 바보였던 것이다.
제대로 심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심은 양파 아가들은 추운 겨울 금호강변의 바람 속에서 건강하게 쑥쑥 자라났다. 그리고 요렇게 이쁘고 튼실한 모양새로 우리 집에 와있는 것이다. 이것 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롭다고 말하면 과장이 될런지.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아 학교의 동료들, 피아노 선생님, 대학원 학생들에게도 조금씩 나누어주었다. 직접 키운 것들을 나누어 먹는 일은 소박하지만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오늘 수업으로 학기가 마무리되었다. 방학 동안도 계속 실습 지도를 해야 하지만 토요일마저 출근해야 했던 이번 학기 강의가 모두 끝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비가 내리는 금요일 퇴근길, 오랜만에 동료들과 풍경 좋은 카페 '삼랑'에서 차를 나누고 왔다. 마음과 몸이 더욱 가벼워졌다.
작은 양파들을 모아 초절임을 만들었다. 그냥 먹어도 아삭아삭 할 것 같은 양파를 소독한 병에 담아두니 그저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 손으로 지었다고 하면 약간 쑥스러운 기분이지만 어째튼 밭에서 내 손길을 거쳐 생산한 작물이 다시 내 식탁으로 들어오고 내 마음으로 들어와 기쁨이 되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밤. 나는 행복하고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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