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는 핑계로 돌보지 못한 밭에는 풀이 가득하다. 마치 풀을 키우고 있는 것처럼.
유월의 나의 토요일 아침은 뽀시래기 농부의 서툰 농사(?)로 시작된다. 일찍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밭으로 갔다. 어제 비가 내린 덕분인지 하늘도 공기도 맑고, 이른 여름 안에서 기분도 마음도 맑다.
생각대로 밭은 풀 천지이다. 두둑 사이도 밭의 가장자리에도 작물 틈새에도 심지어 멀칭해둔 비닐의 작은 틈새에도 온통 풀, 풀, 풀이다. 풀에도 이름이 있으련만 이름 한번 불러주지도 못한 채 제거하려고만 들어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서툰 나의 눈에도 풀들의 생명력이란 기막히게 놀랍다.
두 시간가량 엄청난 양의 풀을 뽑았건만 일은 끝나지 않는다. 10시가 넘으니 초여름의 햇살이 더욱 강해진다. 허리도 뻐근해진다. 물도 안 챙겨 왔는데 목이 말라온다. 슬슬 귀가할 시간이라는 뜻이다. 여름의 낮을 즐기고 해가 지는 시간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한다.
오이가 달렸다. 그것도 엄청나게 굵은^^ 이쁘다. 신기하다. 반갑다. 가지 아래 편에 늘어진 오이를 여러 개 땄다. 우왕! 뻐근한 허리가 언제 그랬다는 듯 곧게 펴진다. 행복하다. 아직 키가 작은 들깨에도 이파리가 가득 달려 곁순을 쳐주면서 잔뜩 잎을 땄다. 이것으로 올해 첫 깻잎 장아찌를 담아야겠다.
집에 오자마자 오이 하나를 잘라먹었다. 맛있다. 시원하다. 신선하기까지 하다. 이 맛에 나는 잘하지 못하는 농사지만 몰입하고 있나 보다.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 때문인가 했더니 언제나 기대보다 풍성한 결과를 주는 자연의 베풂 때문에 계속 이 일이 하고 싶은가 보다하고 생각한다. 이 나이가 되어 겨우 알았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작은 밭에 직접 씨를 뿌리고, 커가는 것을 지켜보며 돌보아주고, 열매를 거둬들이는 과정은 매우 의미 있는 재미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햇살 와랑와랑'한 나의 식탁, 오늘 점심은 내가 거둔 소박한 것들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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