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2005). 비밀과 거짓말, 문학동네.
갑자기 비가 내린다. 윗집에서 빨래 물 내리는 소리인가 했는데 '소나기' 내리는 소리였다. 잠깐 아주 거세게 비를 뿌리다 급히 잦아졌다. 베란다 망에 커다란 '매미' 한 마리가 비를 피하고 있다. 비가 그쳤지만 그대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새 학기를 준비하느라 오랜만에 낯선 지식이 담긴 문장들을 읽는다. 메모를 하고 머릿속으로 지식의 지도를 만들어 본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뇌 세포가 움직이는 듯한 신선한 감각이 나쁘지 않다. 강한 빗소리가 주는 청 감각적 느낌에 인간의 음성에 관한 낱말들을 연관시켜 차곡차곡 저장시켜 나간다.
은희경의 소설은 늘 참신했었다. 다양한 나이의 화자는 늘 냉정한 이성을 지닌 관찰자의 시점으로 인물과 사건을 얘기해 주었다. 관찰자의 문장은 늘 좋았다. <비밀과 거짓말>을 다 읽었다. 다 읽었는데 뭔가 개운치는 않다. 재밌었다던지 아님 재미없었다던지 하는 느낌이 없다. 기대가 너무 컸었던 때문일까. 모르겠다. K읍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온 정씨 가문과 최씨 가문의 대를 이어지는 비밀. 오랜 시간 동안 그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했던 인물들의 거짓말.
요즘 너무 막장 드라마나 웹소설이 많아서인가. 이런 정도의 사연이나 서사로는 소설의 긴박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상상력을 자극하기엔 다소 지지부진한 문장들이었다. 그럼에도 마음에 닿는 문장들이 꽤 있었는데. 도서를 반납하고 나니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1년에 100권 읽기도 참 어려운 일이다. 방학도 거의 끝났다. 작년부터 시작된 '세균과의 전쟁'은 엎치락 뒷치락 계속 이어진다. 서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평화는 언제나 도래하려나 싶다. 어제 급하게 백신을 접종받았다. 눈이 계속 침침하고 머리가 띵하다.
아파트 꼭대기 환풍기가 부지런히 돌아간다. 멍을 때리며 바라보는데 뉴스 속 마냥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 이럴 땐 시선을 돌려야 한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약해졌다. 언제부턴가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공기 중에서 가을 냄새가 난다. 내가 멍하고 있는 사이에도 자연의 부지런한 순환은 계속되고 있음이다. 건강한 그들의 움직임을 느끼고 싶다. 무엇이 일상이었는지 잊어버리기 전에 평화가 모두에게 돌아오기를 하고 바라고 있다.
'가끔은 이렇게 > I Love BOOK^^ ' 카테고리의 다른 글
43. 어디서 살 것인가 (0) | 2021.09.09 |
---|---|
45.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 (0) | 2021.08.29 |
42. 천국에서 (0) | 2021.08.13 |
41. 오직 한 사람의 차지 (0) | 2021.08.11 |
40.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하나의 눈송이 (0) | 2021.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