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뽀시래기 텃밭 일기

양파 심기

Jeeum 2021. 10. 23. 22:27

작년 양파 모종을 쪽파인 줄 알고 샀었다. 옆 밭의 미자 씨가 아니었으면 계속 엉뚱한 농사를 지을 뻔했었다. 마침 그녀가 있었기에 양파인 줄 알았다. 무사히 양파를 심었다. 그랬던 양파가 잘 자라서 올 6월 현충일에 무사히 수확했었다. 내가 키운 양파는 지인들과 조금씩 나누고도 충분히 남아 오랫동안 맛있게 먹었다. 직접 키운 것이라서 더 맛있었고, 단단해서 빨리 무르지 않았다.

 

 

올해도 '양파' 심기를 기대했다. 지난 주, 삼랑진 장날 양파 모종을 처음 보고 이제 심을 때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토요일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번개시장으로 가서 양파 모종을 샀다. 혹시나 해서 유채(동초, 겨울초)와 시금치 씨앗도 샀다.

 

마음이야 잔뜩 심고 싶지만 뽀시래기가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지금도 충분하니까. 오전의 텃밭은 조용했다. 잘 생긴 까치들과 금호강의 서늘한 바람과 햇빛 만이 오갔다. 혼자 귤을 까먹으며 웃었다. 그저께 백신 2차 접종한 사람 맞나 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파서 죽을 뻔했다던데 나는 멀쩡했다. 아주 약간 감기 기운이 오는 가 했더니 그냥 갔다. 타이레놀 하나 안 먹고 양파를 심겠다고 밭에 와서 귤을 먹고 있는 내가 건강해서 우습기만 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형제들도 조카들도 그다지 아프거나 고생하지 않았다. 우리 집 유전자는 '세균'과의 전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지구를 지킬 유전자임을 확실히 알았다. 이기적 유전자이다^^.      

 

 

미리 만들어 둔 밭에 양파를 심었다. 비닐을 씌우고 호미로 구멍을 만들며 심는 폼이 작년보단 쬐금 나아졌다. 혹시 무리되면 안 될 것 같아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양파를 심었다. 언제나 그렇듯 심고 나면 정말 뿌듯하다. 가을이 지나고, 다시 새해가 와서 따뜻한 봄을 지나 단단해진 알뿌리를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쑥쑥 잘 자라기를... 그렇게 단단하고 알찬 열매를 맺는데 두 번의 계절은 필요하니까. 겨울 추위와 바람을 견디고 더욱 단단하고 뽀얀 속살이 차오르기를 바라며 양파를 심었다. 마음만은 언제나 큰 농사꾼이다.

 

빈 밭에 풀을 뽑고 가다듬었다. 가을에는 심을 것이 무 배추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미자씨가 상추나 유채를 심으면 된다 해주었다. 쪽파를 정리한 밭과 새로 정리한 밭에 상추, 유채, 루콜라 그리고 쑥갓 씨앗도 뿌렸다. 자라주면 감사하고, 혹여 싹이 나지 않더라도 그것으로 족하다 생각했다. 텅 빈 밭에 초록들이 건강하게 올라오면 추위가 오더라도 서로서로 위로하고 감싸주며 자라주기를 바랐다. 밭의 식물들도 살아가는 이치야 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며.

 

 

아직은 뽀시래기 텃밭 농사꾼이지만 김장 배추와 무도 잘 자라고 있고, 부추와 시금치는 언제나 가득하고, 곰보 배추도 당근도 잘 자라고 있다. 언제봐도 당근은 잎사귀도 싱싱하고 아직 어리지만 요렇게 이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먹으면 정말 달콤하다. 채 자라지 않은 어린 당근이 보기에 너무 이뻐서 밭에 올 때마다 조금씩 뽑아서 눈으로 즐기고, 입으로도 먹는다. 텃밭 하는 재미 이런 것이다.    

 

 

작년보다 조금더 가다듬어진 나의 텃밭에서 주말의 낮을 즐기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커피를 내려왔고, 제주 감귤도 갖고 왔다. 지치고 허리가 뻐근해지면 주변을 산책한다. 하늘은 맑다. 오가는 비행기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어본다. 여행을 가는 이도 행복하겠지만 그들의 발걸음만큼 나도 즐겁다. 생명들과 함께하는 동안 나도 조금은 싱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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