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뭐라고?
엄마에게 일이 생겨 어제 기차를 타고 대구로 왔다. 하루를 지내고 다시 돌아가는 중이다. 가을이 깊어졌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차갑고, 눈에 보이는 들판이 노랗다. 늦가을로 달리는 풍경을 내다보며 모처럼 여행 같은 출근을 한다. 낮아진 기온 때문이지 왠지 어깨가 낮아진다.
지난 해 봄의 일이다. 이박 삼일의 짧은 일정으로 초행인 두 명의 친구와 데리고 일본 교토를 다녀왔다.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 월요일 늦은 밤 돌아오는 알찬 일정이었다. 짧은 일정이라도 집을 떠나는 일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의 옆구리를 비운다는 것이 여의치 않아 대충 다녀올 요량으로 채비를 했다. 건강 상태가 나빠져 요양병원으로 간 엄마의 식사를 챙기느라 김해와 대구를 오가는 빡빡한 일정에 많이 지친 상태였다. 제대로 숨쉬기 어려운 시간 속에 종잇장 같은 여유라도 붙잡고 싶던 그런 날이었다.
일상의 반복에서 빠져 나가는 설렘 때문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비행기의 제한된 공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육중한 동체의 문이 닫히고, ‘비행기 모드’란 낱말이 뇌를 자극했다. 일순간 칼바람에 찔리듯 머릿속이 하얘졌다.
손이 비어있었다. 허전했다. 언제나 손안에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가방을 뒤져도 나타나지 않았다. 멍한 상태로 한참을 그저 앉아 있었다. 몇 개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탑승구 앞의 화장실’, ‘커피잔’, ‘마쿠야와 구글맵’. 탑승 직전, 화장실에 앉아 미처 챙기지 못한 첫 숙박지의 위치를 확인하고, 스마트폰을 거기에 모셔둔 채 고요히 날아올랐던 것이다. OMG.
여행과 관련된 정보와 일정이 모두 들어있었다. 꼭 가야 하는 장소의 동선도 그가 갖고 있었다. 녀석이 사라진 순간, 너무 많은 것을 그가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가 없으면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도, 직장으로부터 연락을 받는 사소한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그의 존재를 확인할 때까지 그 몇 시간 동안, 여행이고 뭐고 그를 찾을 궁리를 하느라 다른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불편해졌다. 일단 여행의 일정을 확인하는 것이… 친구의 전화기를 빌려 내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메일로 받은 연락처를 확인해야만 했다. 엄지손가락 몇 번만 튕기면 끝날 일을 하느라 두 사람의 전화기를 번갈아 가며 빌려야 했다. 띨띨한 사람 탓에 불편하기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불안해졌다. 말도 않고 집을 떠난 터라 가족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지인이나 동료를 연결하는데 그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대체 그게 뭐길래? 어찌 나의 일상을 이렇게 조정하고 있었던 것인지 어이가 없었다. 왜 우리는……
대구에서 간사이공항 까지 그리고 입국해서 교토로 이동하는 그 몇 시간 동안, 불편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끼며 나는 여행자의 여유를 즐길 수 없었다. 다행히 전화기는 대구공항 직원이 발견하여 보관 중이라는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다시 세상이 보였다. 익숙한 풍경이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곧 꽃이 필 듯 부풀어 오른 벚꽃나무들도 눈에 보였다. 반가운 역의 표지판도 사람들의 움직임도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이렇게 쉬려고 애써 시간을 쪼개고 쪼개 떠난 것임을 겨우 생각하며 억지로 영혼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리석인 친구가 일으킨 사건 때문에 걱정하느라 즐기지 못하고 내 눈치만 슬금슬금 보던 지인들과도 겨우 눈을 마주치며 서로를 위로하며 웃었다. 하지만 왠지 서글펐다. 대체 그게 뭐라고? (2019년 10월 24일, 숙제 마감일을 지나서야 겨우 초고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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