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나의 언어

하얀 원피스의 헐크

Jeeum 2019. 9. 25. 11:11

지인이 식사를 하자고 불러낸 식당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K대학 교수라고 소개받았다. 희끗희끗 백발이 섞였지만 풍성하고 긴 머리카락이 햇살에 빛났다. 초여름 같은 하얀 원피스가 잘 어울렸다.

 

식사 중에 불청객처럼 들어간 탓에 초면에 입에 든 음식을 오물거리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과하지 않은 목소리를 가졌고, 서울 사람이어서인지 말투마저 나긋나긋했다. 우리 두 사람의 강한 대구 말과 서울 사투리가 섞여 나풀나풀 날리는 대화가 재밌었다. 그녀는 처음 보는 나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러웠다. 적당한 거리를 지닌 말들로 편안하게 해주었으며 지나치게 사교적인 빈말이 없어 거북스럽지 않았다.

 

몇 년 뒤, 그녀와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당시 그녀는 학과의 장을 맡고 있었다. 출근 첫날부터 긴 회의를 했다. 일의 전후를 잘 모르는 졸병이라 성급한 의견을 낼 수 없었다. 단순한 결정으로 충분할 법한 안건에 대해 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경청하려고 했다. 다소 지루하고 번거롭기도 했다. 그야말로 섬세한 스타일로 일을 진행했다. 그러나 한결같이 말투는 부드럽고, 무엇이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좋았다.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면 함께 출장을 가야하는 일도 있다. 당시 아직 초년생인 나에게 그녀는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첫 해 여름방학 함께 부산에 갔다. 네비게이션이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였다. 부산 지리를 전혀 모르는 나를 대신해 그녀가 운전을 했다. 처음 그녀의 차를 탔다. 자동차의 내부는 여러 가지 물건들로 어지럽고 지저분했다. 내 차도 다를 바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조수석에 앉으면 자동차의 모든 조작 버튼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비상경고등의 선명한 붉은 색이 거의 벗겨져 있었다. 그렇게 바랜 경고등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오래 차를 몰았다고 해서 이 정도로 바랠 수 있나 싶었다. 이상했다.

 

교문을 나서 차가 거리로 들어섰다. 그 때 난 이미 직접 운전하지 않음을 깊이 후회했다. 가만히 앉아있기 힘들었다. 조용조용한 용모에 부드러운 말투의 그녀는 폭주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하얀 원피스의 하늘거림 속에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헐크가 서서히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신호등이 많은 시내, 신호등과 신호등 사이가 50미터를 조금 넘는 거리에서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그리곤 브레이크도 비슷하게 꽈악 밟았다. 오마이갓. 얼른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붙들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속도는 그나마 고속도로에서는 괜찮았다. 부산시내로 들어섰다. 부산 거리가 낯설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무섭고 두려웠던 기억은 무의적으로 잊어버리고 만다고 했던가. 당시의 기억은 망각하고픈 일이었다. 세세한 일까지 모두 생각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위태로움 때문에 두근두근, 조마조마, 오싹오싹 섬짓했던 뜨거운 느낌은 아직도 고스란히 가슴 속에 남아있다. 횡단보도 위 노란 신호의 끝을 타고 가볍게 건너고, 철길이 있던 거리에서 정지 신호를 위태롭게 무시하고, 유턴 표시가 없는데 필요하면 느긋하게 유턴을 했다. 잘못된 차선에서 좌측 턴도 쉽게 했다. 그럴 때마다 비상경고등을 습관적으로 켜고 끄기를 반복했다. 너무 놀라서 힘들다고 말을 했지만 그것이 일상인 양 내가 원하는 그녀다운 부드럽고 조용조용한 운전을 해주지 않았다. 그날의 몇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일을 마치고 학교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했다. 다시는 이 분이 모는 차를 타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운전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후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같은 경험을 전해 들었다. 그녀는 과연 괜찮은 것인지 궁금했다. 괜찮을 리 없었다, 그녀의 거친 운전은 자주 사고를 냈다. 함께 일하는 동안 그녀에게만 사고 소식이 유독 많았다. 그렇게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운전 습관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때 이후 단 한 번도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란 참으로 알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엔 조용조용하고, 함께 일을 해보면 섬세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가득 한 그녀가 운전만 하면 폭주와 신호위반을 밥먹는듯이 할 수 있는지 도저히 모를 일이다. 역시 인간의 내면에는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다양한 얼굴의 자아가 존재하는가 보다. 그러나 폭주나 신호위반은 제발 안했으면 싶다. 이유야 당연하다. 그녀도 그녀 곁의 누군가도 안전해야 하는 소중한 생명이므로.

 

그녀는 금년 8월 정년으로 직장을 떠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년을 일 년 앞둔 작년 여름. 황반변성이라는 질병 때문에 수술도 했지만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어 버렸다. 그 때부터 자주 운전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아찔한 취미(?)를 못하게 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그녀가 없는 학교에서 나는 언제까지나 건강하고 행복한 그녀이기를 막연하게 소망할 뿐이다.

 

(2019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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