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휴대용 전화기
길을 걷는다. 어김없이 손에 휴대폰이 들고 있다. 같이 거리를 걷는 이들 모두 휴대폰을 들고 있다. 정신없이 화면을 보며 걷는다. 재주를 부리 듯 양 손으로 리듬감 있게 두드린다. 누군가와 재밌게 이야기하거나 화를 낸다. 게임도 한다. 이제는 이런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문득 묘한 기분이 든다. 신기하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는 1999년 겨울부터 휴대용 전화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0여년이 흘렀다. 그간 수많은 종류의 휴대용 전화기를 사용했다. 그러나 긴 세월동안 한 번도 그것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 어느 새 휴대용 전화기는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잠시라도 없으면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런 만큼 소중한 것이 된 것일까?
현재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장점이 매우 크다. 언제 어디서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여행지에서의 잠자리도 요기를 할 식당도 메뉴까지도 정해준다. 예전처럼 수첩을 살 필요가 없다. 시간을 들여 일일이 정리해 두지 않아도 수많은 전화번호는 자음 순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필요할 때는 그냥 꺼내 쓰면 된다. 낯선 길에서도 헤매지 않게 해준다. 막히는 길을 피해 빠르고 정확한 길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평생 직접 만날 수 없을 석학의 강의도 들을 수 있다. 이름 모를 국가의 낯선 이와도 하려면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다. 독서도 공부도 가능하다. 외국어 공부를 하러 예전처럼 학원을 찾을 필요가 없다. 스마트하게 스마트폰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더 행복해 졌을까?
휴대용 전화는 가끔 우리를 힘들게 한다. 업무를 시작할 시간도 아닌데 끝도 없이 업무 공지가 날아온다. 학생들의 문의가 가끔 주말의 여유를 방해하기도 한다. 정보가 넘치다 못해 진실을 분간하기 어렵다. 업무도 인간관계도 여가생활도 많은 것들이 전화기를 통해 이루어지고 진행되니 이것을 손에서 놓기 어렵다. 이 작은 녀석은 물귀신처럼 나의 삶에 달라붙어 버렸다. 우리 모두 이 친구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학 친구 한 녀석은 고집스럽게 휴대용 전화기를 거부한다. 별난 녀석이다. 아무리 말을 해도 정작 본인은 필요 없단다. 친구는 전혀 불편이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불편하다. 문득 생각나면 메시지로 안부를 묻고, 전화로 시간과 장소를 정해 만나야 하고, 그러지도 못하면 전화로 대화라도 해야 하는데 이 친구와는 그게 쉽지 않다. 지난 주 갑작스런 친구 부고가 났을 때도 모두 단체 카톡방 문자 하나로 소식을 받았으나 친구만이 그렇지 못했다. 누군가가 수고롭게 그의 아내에게 연락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친구가 싫은 것은 아니다. 가끔 문득 그가 보고 싶을 때, 느닺 없이 그가 궁금해 질 때면 거리가 멀다.
작년 봄 대구공항에서 일본으로 출국하다 비행기 탑승장 화장실에 스마트폰을 두고 떠난 적이 있다. 비행기가 출발하고서야 분실한 사실을 알았다. 4일간의 여행에 필요한 많은 정보들이 들어있어 처음에는 당황했었지만 실제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없어 좋았다. 카메라가 없으니 어딜 가도 눈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한 교토의 거리에서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작은 것이지만 없으니 손이 자유롭고 홀가분해서 대신 나무도 만지고 풀도 만질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세상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다시금 주위를 보니 여전히 사람들은 전화기를 보고 있다. 어두운 저녁길에도 눈은 여전히 전화기를 향한다. 저러다 넘어지거나 부딪힐 것 같다. 전화기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 가방속에 집어 넣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다시 꺼내본다. 이 물귀신 같은 녀석!!!(2019.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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