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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손맛이 그립다

Jeeum 2019. 5. 16. 09:33


엄마의 손맛이 그립다

 

  

 

월요일마다 카풀로 함께 출근하는 여성이 있다. 이번 주 출근길에 그녀와 나눈 수다는 요리’, ‘밑반찬에 관한 것이었다. 흔하디흔한 마른 반찬 얘기다.

 

휴게소에서 커피를 사들고 다시 운전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갑자기 나는 요리를 거의 못해요.”라고 말을 시작했다. 언니가 때맞춰 늘 김치를 해 보내 주는데 하도 안 먹어 늘 버리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렇게 먹는 것에 관한 수다가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혼자 자취해온 그녀는 여전히 햇반을 먹고,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서 현미 햇반을 먹는다고 했다. 가슴에서 소리가 났다. 멸치볶음을 하는데 다듬은 멸치를 물에 씻었다고 했다. 머리에서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두었다간 지성미 넘치는 이 여성의 식생활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주제도 안되면서 오지랖을 떨기 시작했다. 그녀보단 내가 조금 낫다는 생각에 몇 마디 해준다는 것이 긴 수다가 되어버렸다. 우리들의 식탁에서 밑반찬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직장을 가진 여성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많이 만들어 냉장고에 두고 언제나 가볍게 꺼내먹는 평범한 음식이지만 매우 중요하다. 나도 밑반찬을 자주 만드는 편이다. 그녀가 어려웠다던 멸치볶음을 비롯해 견과류에 새우나 꽈리고추 볶음, 황태채나 진미채 무침 등이 자주 하는 반찬이다. 대략 한 두주에 한번 한두 가지씩 만들어 둔다. 힘들면 사먹어도 상관없지만 이상하게 직접 만들고 만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멸치 볶음과 진미채 무침 방법을 유치원생에게 설명하듯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기분좋게 맞장구를 쳐주는 그녀 덕분에 신이 났었다. 그 탓인지 언니가 준 김치는 절대 버리지 말라고 건방을 떨었다. 오늘 집에 가서 당장 두 개정도 꺼내 조금 두꺼운 냄비에 넣어 찜을 만들어 먹으라고 까지 했다. 더불어 무지 쉽다고 방법을 알려주었다. 오래된 김치는 하루 동안 물에 담가두었다가 잘게 썰어 소분하여 냉동실에 두라고 했다. 조금씩 꺼내 김치볶음밥, 콩나물 김치국, 김치 라면까지 하면 된다고 거창하게 알려주었다. 성실한 그녀는 내말대로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하하하. 주제도 안되면서 너무 많은 말을 했나 싶었지만 엄청난 요리고수가 된 듯 주름을 잡고 말았다. 덕분에 긴 출근길이 찰나에 지나갔다.

 

꽤 음식 솜씨가 좋았던 나의 엄마는 언제나 뚝딱뚝딱 일품요리를 만들어 내놓았다. 국은 늘 있어야 되고, 한번 먹은 음식이 다시 상에 올라오는 걸 싫어하는 남편 때문에 엄마는 늘 맛있는 음식을 해주었다.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잘 먹으며 자랐다. 이런 엄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굳이 내 손으로 요리를 할 이유가 없었다. 언제 귀가해도 내가 먹을 음식이 늘 있었다. 아픈 엄마가 점차 집안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서 요리를 하고 집안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요리하는 것이 꽤 재밌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책도 사보고, 네이버 레시피도 찾아보며 이것저것 했다. 나만의 요리 레시피 파일을 만들기도 했다. TV에서 백종원이나 김수미 언니가 하는 요리도 자주 보았다. 혼자서 밥을 대충 먹을 때도 물론 있다. 그러나 가능한 금요일이나 주말 저녁은 열심히 일한 나에게 내가 주는 상으로 제대로 음식을 하여 플레이팅까지 해서 맥주나 와인과 함께 먹기도 한다. 아주 가끔 지인들을 집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십대의 내가 그저 살거나 일하기 위해 먹는 것이 음식이라고 믿었던 것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변화이다. 이런 변화는 내 속에 숨어있는 엄마의 유전자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수미네 반찬에서 수미언니가 어릴 적 엄마의 맛이 그리워 그 맛을 내느라 요리를 잘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완전 공감한다. 뒤늦게 어쩔 수 없이 시작된 일이지만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나 내가 수미언니만큼 요리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가끔 엄마가 해주던 그 요리들을 생각한다. 탕수육에 고추장불고기까지 집에서 먹던 엄마의 요리가 그립다. 그런 요리를 하느라 분주했던 건강한 엄마의 움직임과 목소리가 그립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김치콩나물 국을 끊였다. 이것도 엄마가 자주 해주던 국이다. 아직 엄마의 맛은 아니지만 나름 먹을 만한다. 요리하는 것이 즐거음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에 감사한다. 베란다 장독에 엄마가 마지막으로 담구어 두었던 간장이 조금 남아있다. 그 간장을 넣으면 엄마의 맛이 나려나 생각하다 카풀의 그녀는 오늘 아침 무엇을 먹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2019.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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