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직장인에게 토요일은 놓치기 아까운 꿀맛 같은 휴일이다. 뒤에 일요일이란 듬직한 놈까지 버티고 있으니 더욱 마음이 가볍다.
토요일 아침은 잠과의 가벼운 실랑이로 시작한다. 햇살의 간지러운 유혹 따위 무시하고 늦잠을 자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다. 5시가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뇌세포가 일상으로 돌아오고 말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은 엄마를 케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엄마’하고 부르며 인사를 하고 얼굴을 부비며 일어나기 싫어하는 엄마를 깨운다.
평화스럽다. 4월의 부지런한 아침햇살로 즐기며 찻물을 끓인다. 식탁 한편에 둔 다기에 보이차를 우린다. 보이차는 연하게 우려 바나나 반쪽과 함께 마신다. 금세 몸이 따뜻해진다. 등을 바로 세우고 양반다리를 해보지만 한쪽 다리가 의자 밑으로 떨어진다.
듣기만 해도 설레는 ‘문학기행’을 꼭 가고 싶었다. 엄마와 함께해야 하기에 포기하고 베란다에 놓아둔 엄마 의자에 앉아 본다. 엄마가 변기로 사용하던 의자다. 다시 사용할 수 있으리란 기약이 없지만 뚜껑만 덮으면 듬직한 의자가 되기에 버리지 못하고 베란다에 내어놓은 것이다.
의자에 앉아 창문 너머 엄마가 코를 고는 소리를 듣는다. 나의 베란다는 참 소박한 꽃밭이다. 겨울 내내도 꽃을 주던 일일초 가지에 잎이 더 풍성해지더니 하얗고 붉은 꽃이 가득 피었다. 베고니아에 제라늄도 꽃이 피었다. 캄파눌라를 심었더니 알록달록 꽃들이 소복이 피어있다.
참 좋다. 살짝 열린 창으로 문학기행을 떠나는 이들의 들뜬 웃음이 실려 오는 듯하다. 지난 주에 심었던 허브를 손으로 살짝 어루만져본다. 허기를 느끼게 하는 허브향이 달콤하게 피어오른다. 서늘한 기운에 밀려 들어와 보니 언제 깨었는지 엄마의 눈길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침을 차려 엄마에게 먼저 드린다. 최근 엄마의 건강상태가 무척 좋아져서 맛없다하면서도 식사를 잘하신다. 식사시간이 한결 편해졌다. 후식까지 드시고 약을 드시는 시간까지 이제 40분이면 충분하다. 다시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가려는 이 봄의 목표가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에 콧노래를 불러본다. “엄마. 수고했어요.”
오늘 아침 나의 식사는 김치찌개이다. 이집 저집에서 주신 김장김치가 푹 익어 맛있는 묵은지가 되어 있었다. 어젯밤 오랜만에 미리 김치찌개를 만들어두었다. 푹 익은 김치찌개와 김, 계란 프라이가 조촐한 나의 아침 식사이다. 여전히 시간은 아홉시 반. 일찍 일어난 대신 엄청난 시간의 여유를 얻었다.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해도 오늘은 왠지 충분히 뒹굴거릴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10시에 자동차 세차를 예약했는데 빨리 갔다 와야겠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 올 때 공원을 거쳐 산책하면 딱 그만일 것 같다. 외출 준비를 하는데 엄마의 눈길이 계속 추격하고 있다. 무슨 말로 설명을 할까 고민하는데 마침 오빠가 왔다. 대신 세차를 맡겨주겠다고 한다. 외출의 변명거리를 찾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잠시 엄마 옆에 앉아 TV를 본다. 엄마는 이제 TV와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TV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화 광고를 하는 박 보검의 손짓을 보고 놀린다고 울상을 짓는다. “잘 생긴 보검아. 미안해. 이해해주렴.”
커피를 내린다. 커피콩을 갈아서 천천히 느긋하게 내린다. 커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커피를 내릴 때 풍기는 커피향이 얼마나 좋은지는 안다. 딱 한잔. 오늘은 어느 잔에 마실지를 고민한다. 아침 거피는 가볍고 부드럽게 노란 잔에 담아 본다. 엄마 침대 옆 소파에 앉아 마신다. 참 맛있다. 일의 스트레스도, 번잡한 약속도 회의도 출장도 없는 오늘 같은 토요일 아침의 이런 평화가 너무 좋다. 푸른 하늘에 구름으로 베개를 베고 누우면 이런 기분일까? 이런 휴식 같은 토요일의 바람과 햇살과 일상이 지금의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하나의 행복이다.
그러는 동안 나를 줄기차게 따라오며 지켜보던 엄마가 부른다.
“미야~~”
“왜~~~~~?”
“뭐 머거?”
“커피. 엄마도 줄까?”
“응”
부지런히 믹스커피를 타러 간다. 문학기행을 못가는 토요일 아침이지만 행복하다. 4월의 부드러운 햇살이 와랑와랑 넘치는 토요일 아침이다. (2019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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