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아무튼, 식물

Jeeum 2022. 7. 19. 12:02

2022-47

임이랑 (2019). 아무튼, 식물, 코난북스.

 


'아무튼' 시리즈가 나온 지 벌써 몇 년 되나 보다. '아무튼' 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라고 소개된다. 조카가 묻는다. 고모에게 '아무튼'은 뭐냐고. 생각만 해도 좋은 게 뭐가 있나? 아무튼 소설, 아무튼 피아노, 아무튼 수채화, 아무튼 연필, 아무튼 베란다 꽃밭, 아무튼 책방, 아무튼 커피, 아무튼 여행, 아무튼 콩, 아무튼 샐러드, 아무튼 텃밭~~~. 생각만 해도 좋은 게 너무 많다. 이 중 하나를 고를 수 없다. 역시 내 인생의 테마가 없다는 의미일지도.

 

'아무튼, 식물'은 EBS 식물 수다의 진행자 '임이랑',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의 저자 임이랑의 아무튼 시리즈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식물'이 따라다닌다. 식물이 주는 위로와 식물에게 마음을 주며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아주 쪼금 아는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한 아무튼 시리즈이다.

 


초점 없이 괴롭기만 했던 어제 연수 시간 동안 그나마 이 책이 있어 견딜 수 있었다.

 

 

작가 말대로 새로운 누군가에게 자기 상황을 설명하는 일은 참 어렵고 싫은 일이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글러 땐 모른 척해주는 것도 좋은데. 살다 보면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지만 사람과 알아가는 과정은 더욱 어렵고 좋은 관계를 지속하는 것도 참으로 어렵다.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은 깐깐하고 예민해서라고 자책하기 쉽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식물에게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식물이 내게 직접 말을 거는 경우는 없으니까. 다만 내가 조용히 말할 수 있을 때 말하면 된다. 하기 싫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대상. 어쩌면 식물 일지 모른다. 식물이 있는 베란다는 문을 열면 바람이 불어오고 눈을 들면, 하늘이 보이고, 좋아하는 물도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공간이다. 작지만 식물이 가득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마음이 공기처럼 가벼워진다.

 


그래서 나도 베란다 꽃밭을 소박하지만 가꾸고 다듬도 새 친구를 찾고 분갈이를 하고 화분을 옮기고 하나보다. 그 시간 동안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그러다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안정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리는 비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적당함이란 언제나 지키기 어려운 선이다. 단단하게 잡고 있던 머릿속 끈이 살짝만 느슨해지면 적당함을 놓쳐버린다. 바싹 긴장하고 있지 않으면 금방 적당함을 벗어나는 실수를 하게 된다. 담백한 사람 앞에서 살짝 질척하게 굴기도 하고, 따뜻한 사람의 온도에 맞추지 못하고 냉하게 돌아서기도 한다. '아차 실수다!' 알아차리지만, 노무 늦었다. 적당하지 못한 죄로 관계는 쉽게 고장 난다. 고칠 에너지가 남아 있는 관계라면 다행이지만, 고장 나면 포기하고 돌아서게 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20쪽)

 


예민한 저자가 보인다. 그렇게 고장 나는 관계는 정말 많다. 일일이 맘을 쓰다가 내 마음이 더 상한다. 그럴 땐 그냥 무덤덤해지는 게 좋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이 나이의 나도 그러니까. 우리 모두 그러고 사니까.(나)

 

 

식물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꾸준히 식물의 권리와 자율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 세상에는 분재라는 방식으로 식물을 기르는 사람도 있다. 나무의 성장을 제한하여 크게 자라지 못하게 하면서 구미에 맞는 모양으로 기르는 것이다. 나무의 의지대로는 1밀리미터도 자라지 못하게 가지란 가지는 꽁꽁 싸매고 일부러 비틀고 꼬아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 너무 가학적으로 보인다. 전족과 다를 바가 없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어서 분재 박물관에 갔다가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적이 있다.(35쪽)

 


'식물의 권리와 자율성', '나무의 의지'

 


생각도 못해 본 낱말이었다. 충격적인 언어였다. 햇빛을 향해 한쪽으로 기울어진 화분을 돌려놓으면 어느샌가 다시 반대편으로 기울어져가던 식물의 움직임을 익히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작은 식물의 움직임을 알고 얼마나 대견한 마음이 들었는지, 빛을 향한 그 움직임에 위로받은 것이 컸었는데.(나)

 


여기에 '권리', '자율', 그리고 '의지'라는 낱말까지 붙여 볼 생각은 추호도 못했는데. 너무 큰 어젠다여서 소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좀 더 길게 식물과 꽃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해 보고 싶다.(나)

 

 

이번 생은 한 번뿐이고 나의 결정들이 모여서 나 삶의 모양이 갖춰질 테다. 그러니 자라나지 않는 것들도 계속해서 키울 것이다. 거대하게 자라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내 삶 속에 나와 함께 존재하면 된다.(60쪽)

 

 

가끔 애써 마음 주고 기른 것들이 죽어버리기도 한다. 죽었나 싶어 내처 놓았더니 마른 가지에서 이파리가 돋아난다. 과감히 잘라 버릴 때 마음이 움찔거리기도 한다. 쓰레기 봉지까지 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내게는 항상 율마가 숙제였다. 잘 키우고 싶은 식물인데 언제나 잘 키우지 못했다. 작년에 제주로 가기 전 율마 아기를 두 개 샀다. 내가 없는 동안 물을 주고 바람을 틔워준 사람은 따로 있다. 덕분인지 작 자라나 분갈이도 했다. 그중 하나가 얼마 전 죽었다. 가지를 몽땅 잘라내면서 아팠다. 아직 버리지 못했다.(나)

 


지인에게 받은 덴드롱이 있다. 내게 온 지 올해로 3년째. 2년간 아주 대견하게 꽃을 피워 주었다. 그러나 올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가지를 몽땅 잘라주고 그냥 구석에 방치했다. 그 가지에서 이파리가 돋아났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나)

 


쉽게 자라는 것들과 아무리 공을 들여도 자라지 않는 것들이 뒤섞인 매일을 살아간다. 이 두 가지는 아무래도 삶이 쥐여주는 사탕과 가루약 같다.(60쪽)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이지 않는 게 아니라, 살아 있을 동안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식물의 삶이란 가끔 매우 끈질겨서 아름답다. 소리 없이 죽어가기도 하지만 비밀스럽게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마법 같은 순간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나무를 몇 개월 씩이나 정성껏 돌보게 만들 정도로 중독적이다.(123쪽)

 

 

식물이 죽는 데는 각기 다른 이유가 있지만, 완벽한 환경에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죽기로 결정하고 죽어버리는 식물도 있다. 가끔은 식물도 자살을 한다. 일단 죽기로 결정한 식물들은 이 세상의 어떤 비옥한 땅이나 금쪽같은 비료로도 살릴 수 없다. (124쪽)

 


식물의 세계가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와 닮아있다. 사람의 선택. 사는 곳,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 등등. 언젠가는 사라질 모든 것들이지만 내 곁에 와서 나를 이루는 시간 동안. 다만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돌보고 마음을 주는 것.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그런 것들일지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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