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춘천살이' 동안 만난 장소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곳(場). '첫 서재'
10년을 주기로 삶의 마디를 짓고 싶어하는 듯한 방송기자 '남형석'. 40대를 30대처럼 살지 않으려고 장기 휴직을 하고 연고도 없는 춘천으로 왔다. 육림고개, 오래된 골목 깊숙이 자리한 폐가를 손질하여 공유 서재를 열었다. 두 번째의 여지를 전해주는 이름 '첫 서재'
이 곳에서 2년을 아내와 아들과 일상을 살며, '실컷' 읽고 쓰면서 살고 있다. 12월이면 다시 서울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한단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이 공간을 어떻게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아내가 말했다.
사는 것을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잘 살고 있는지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이 걸어가는 삶의 궤적 안에서 중심을 잡기 위한 노력조차 호사스럼이 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내가 걸어온 길을 더듬어봐야 한다. 그 길이 구겨져 있으며 최소한 펼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 길이 지나치게 꽃길이어도 조심하려 노력해야 한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야 하는 길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좋은 직장을 가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년간 휴직이 가능한 직장이 얼마나 될까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 휴직이 가능한 직장을 가진 모든 사람이 삶의 마디 마디에서 멈춰갈 용기를 갖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첫 서재의 주인장이 박수를 받는 것이 아닐까.
그가 첫 서재에서 마무리한 책 '고작 이정도의 어른'을 보면 삶에 대한 그의 진지함, 예민함, 버티고자 하는 고집스럼 등이 전해온다. 고작이 아니라 그 정도의 어른이어도 충분할 텐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오래 달려온 길에서 벗어나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왜곡된 것이 있으면 자신의 시점에서 바로 잡고자 했던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첫 서재를 선물로 받았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2023년 1월 25일 첫 서재는 문을 닫았다. 주인이 현직으로 돌아가면서 가족들과 다시 서울로 갔다고 한다. 그러나 첫 서재는 그 자리에 그대로 문을 닫은 채 있다. 생각 같으면 내가 할 테니 내게 넘기라고 하고 싶다.
첫 서재는 좋은 장소이고, 공간이다. 그냥 두기엔 아까운 공간이다. 공간을 만든 주인의 소망을 닮은 공간은 지친 사람들을 쉬게 해주고, 영혼이 헐벗은 사람들을 채워주고, 바쁘기만 한 일상에서 벗어나 느림과 여백을 알려주는 공간이다. 단 한 번이었지만 그곳에서 읽은 그림책들과 그림책들 사이사이 붙어있던 글자들과 메모들을 잊을 수 없다. 영혼을 맑게 하는 약을 먹은 느낌이었다. 첫 서재를 만들어준 주인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