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계속해보겠습니다

Jeeum 2023. 1. 28. 14:12

황정은(2014).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23-7

 

황정은 소설가의 작품 중 두번째로 읽는 책.

 

문장이 벽 너머에 있다. 그렇다고 벽이 두꺼운 것도 아니다. 차라리 투명해서 훤히 들여다 보이기도 한다. 알듯 말 듯, 함께 느낄 수 있다가 아니다가, 손을 잡고 싶어 지다가 피하고 싶기도 하다가.

 

읽기 어렵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수학 문제가 아니다. 생각하기 어려운 문장도 아니다. 읽다보며 마음(심정)이 곤란해지고 어려워진다. 그러다가 한숨이 나오고 아파지기도 한다. 속에 가스가 차는 것 같다.

 

56쪽을 읽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있지.

하고 애자가 말했다.

좋은 것은 좋지.

좋은 것들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감탄하고 호들갑이지.

좋은 것들이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말 그대로 귀하기 깨문이란다. 

세상에 좋은 것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감탄하고 칭송하는 거란다.

별로 없어. 좋은 건.

그러니까. 그런 걸 기대하며 살아서는 안되는 거야. 

기대하고 기대할수록 실망이 늘어나고, 고통스러워질 뿐이야.(57쪽)

 


발을 땅에 딛고 있지 않는 느낌이 든다.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때는 두 가지다. 뭔가 좋은 일로 기분이 날아오르는 상태. 아니면 불안한 상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후자이다. 그러나 자신의 불안한 상태로부터 오랜 시간 지극히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거쳐 이제는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자신들의 상태를 원래 다 그런 상태라고 느낀다. 그것을 자신들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평안하고 무덤덤하고 침착하다.

 

소라, 나나, 나기 세 사람의 이야기는 모두 무채색이다. 처음부터 색이 없었다. 색을 제대로 칠한만큼 마음의 여유란 걸 갖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를 본다. 따지고 보면 누구에게나 다 그렇지 않을까. 허무하고 하찮은 거 천지 아닌가.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그리워한다는 것도, 성장하고,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 등등 모두 시작도 끝도 모두 다. 하지만 그래서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귀한 것이라는 나나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227쪽).

 

세 사람으로 대변되는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더 크다. 남의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도, 나나의 아기가 자그자그자그 하고 공명하는 소리도, '계속해보겠습니다'로 끝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도. 우리들의 삶은 여전히 지속되고, 지속할 수 있는 시간도 지겨울 만큼 많이 남아있고, 지속되는 동안 즐겁기도 하고, 간혹 슬프기도 하면서 그래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여지가 남아 있으니까.

 

마지막 문장 "계속해보겠습니다"는 온통 무채색인 수채화에  밝게 빛나는 하일라이트가 되었다. 그래서 고맙다. 읽는 동안의 피로감이 풀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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