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왜 아빠와 여행을 떠났냐고 묻는다면

Jeeum 2023. 2. 4. 08:34

안드라 왓킨스(2015), 신승희 역(2017). 왜 아빠와 여행을 떠났냐고 묻는다면, 인디고.

 

2023-9 

 

읽던 여덟 번째 책은 잠시 제쳐 두고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한다. 여행은 준비와 시작 과정이 즐겁다. 흥분되고 들뜬다. 십 대는 서로 소리만 질러대고, 이십 대는 질세라 열변을 주고받았고, 삼십 대에는 서로 속만 끓이다 멀어진 부녀의 714킬로 나체즈 여행. 낯선 동네에서 어디로 갈지 두려운 한편 살짝 설레는 기분이 든다. 이들의 여행을 글로 같이 간다. 걷기 시작이다.

 

드디어 걷기 시작하는 순간. 안드라는 무섭다. 아무도 관심 없을까 봐. 자신이 할 수 없을까 봐. 예기치 않는 위험에 노출될까 봐. 친구 앨리스가 속삭인다.

 

"그저 걷기 위해 5주를 투자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그것도 혼자서. 무섭고 외지고 위험하기까지 한 곳을. 너는 여기에 왔어. 너는 걸으려고 해. 그 꿈을 버리지만. 즐기면서 잘 해낼 거라고 약속해 줘. 응?"(55쪽)

 

24킬로씩 4일을 걸으면 사람이 어떻게 될까. 게다가 미시시피의 3월에는 폭풍이 불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얼음이 언단다.  그런 날씨에 주위의 만류에도 안드라는 고집스럽게 걷는다. 그런 상황에서 걸으면서 왜 지나간 가장 아픈 일들이 생각나는 걸까. 고통을 자처하며 왜 걷는 걸까. 다만 자신의 책을 홍보하려고. 이해하기 어렵다. 걷지 않는 밤은 고통으로 힘들다. 아버지는 변함이 없다. 30대에 그랬던 것처럼 계속 갈등한다. 읽는 사람은 웃기고 재밌기도 한데. 정작 본인은 어떨지. 왜 이런 과정이 필요했을까. 앞으로 남은 4주 동안 어떤 일들이 생길지 걱정된다.

 

첫 번째 한주. 6일을 걷고 하루를 쉰다. 안드라는 예정대로 하루 24킬로 6일을 걸었다. 발은 너덜거린다. 온몸은 어떨 것인가. 말하나 마나 아닌가. 

 

나체즈길은 한 시절 인디언과 개척자들의 길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람이 걸을 길이 아니고, 자동차를 위한 도로다. 그것도 고속도로다.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미쳤다고 하는 일은 한다. 몸의 한계와 환경의 고난을 받아들이고 안드라는 걷는다. 가끔 걷는 이유를 잊어버린다. 원치 않지만 자꾸 가족을 떠올린다. 동행하는 아버지와 는 아직 화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무리하게 걷는 딸을 지켜본다. 딸은 언제나 아버지가 스스로만을 위해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닐지도 모른다. 


 

2주 차 휴일 하루 남편과 함께 지냈다. 그와 지낸 짧은 시간은 마치 추억처럼 느껴진다. 3주 차부터 엄마가 함께 한다. 엄마는 건강하지 못한 아빠와는 다르다. 엄마가 오면 아빠가 돌아갈 것을 미리 걱정했지만 부부는 함께 딸의 모험에 동행한다. 3주 차 첫날 엄마가 함께 걷는다. 엄마는 마치 건강을 자랑하듯 경주하려 한다. 딸이 소리친다.

 

"이해해요. 하지만 전 지난주에 이 길을 걷는 게 경주가 아니하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어서 끝내려고 서두르는 식으로는 이 여정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해요. 그냥 순간순간을 음미하고 싶어요. 아시겠어요? 빛에 따라 변하는 색을 보고 새와 동물의 노랫소리를 듣고 산들바람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요. 그렇게 하실 수 있겠어요?"(216쪽)

 

내가 헐떡거리지 않고 숨을 쉴 수 있는 적당한 속도로 걷기 시작하자 엄마가 내 옆에서 걸었다. 더없이 행복한 몇 분 동안 우리는 속도를 맞추어 걸었다. 햇빛이 도로에 기다란 흔적으로 드리웠고 나무에서 어린 나뭇잎이 솟아났다. 골반과 무릎과 발목이 마침내 풀렸다. (217쪽)

 

살아가는 동안 순간순간이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도 사실 드물다. 그걸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무리하지 않는 속도로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걷는 일. 사실상 가장 어려운 일이다. 안드라는 걷는 동안 하나씩 그동안 회피했던 것들을 직면하며 변하고 있다. 적어도 나는 안드라의 변화가 느껴진다.     

 

안드라는 모두 걷는다. 편두통에 복통, 배탈, 탈수증이 와도 걷는다. 예정대로 하루 24킬로씩 걸어 모두 걷는다. 그러는 동안 엄마가 짧은 거리 동행해 준 것처럼 남편 마이클이 잠시 함께 걸어준다. SNS로 만난 친구들이 와서 같이 걸어주기도 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엄마와 아빠는 차를 타고 이동하며 위험을 미리 알고 챙긴다. 다시 가족으로 산다. 중년의 딸은 34일을 부모와 같이 지내면서 부모가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이가 든다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빠와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내가 걷는 목적은 단순히 책 때문이 아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나는 늙어가는 부모와 함께하는 모험의 가치를 몰랐다. 문명은 역사의 실수를 되풀이한다. 마찬가지로 가족은 불화를 대대손손 답습한다. 714킬로미터를 혼자 걷는 도보 여행은 헛된 기대들을 벗겨냈고 나를 엄마와 아빠에게 밀접하게 결합시켰다."(307쪽)

 

"643킬로미터를 걸으면서 아빠를 발견했다. 나체즈 길은 아빠에게 향하는 문이었다. (중략) 비로소 내가 투명한 렌즈를 통해 아빠를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342쪽) 

 

안드라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한다. 더늦기 전에 아빠와 단둘이, 아니면 부모님과의 여행을 해보라고. 더 늦기 전에 서로를 온전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아쉬운 점 : 첫 번째, 사진 한장 없다. 그 길을 걸은 그녀의 모습이 보고 싶다. 검색을 해보면 나체즈길은 자동차로 여행하는 사람이 많은 길이다. 궁금하다. 걷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길은 어떤지. 사진. 혹시 개정을 할 땐 사진을 넣어달라. 두 번째, 1980년대 만든 보청기를 아직도 사용하면 안된다. 안드라. 우선 아빠의 보청기부터 바꿔라.  

'가끔은 이렇게 > I Love BOOK^^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어가 숨어있는 세계  (0) 2023.03.05
시와 산책  (0) 2023.02.21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0) 2023.01.28
계속해보겠습니다  (0) 2023.01.28
백의 그림자  (0) 2023.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