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추억의 아주 먼 곳

Jeeum 2023. 4. 27. 09:20

윤대녕(1996). 추억의 아주 먼 곳, 문학동네.

 

2023-24

4/26~4/29

평론을 합쳐 197쪽의 비교적 짧은 장편. 그러나 서른두 살의 남자의 심정에 이입되지 않아 술술 읽히지 않는 소설.


 

어쩌면 삶이라는 건 이런 우연한 풍경의 몇몇 조합으로 이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인식하고 있는 시간이란 사실 전 인생을 통틀어본다면 몇 날 며칠에 지나지 않으리라.(72쪽)

 

동고가 되어 본다. 동고는 서른둘이다. 여행사 직원으로 일하며, 대학 친구 형규의 여동생 유란이라는 여자친구가 있다. 유란이는 은행원이다. 매주 금요일 만나 함께 지낸다. 겉으로는 요정도의 삼십 대 초반의 남자다. 별로 복잡할 것도 없다.

 

동고는 세살에 엄마로부터 버려졌다. 아버지는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엄마를 찾아다니느라 동고를 고모에게 맡겼다. 고모가 잘 키워주었다. 그러나 동고는 상처를 받았다. 그 상처는 추억이 아니라 기억으로 남아 아무리 아닌 척 하지만 여자관계나 삶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유란을 알기 전 동고는 권은화라는 여자를 만났다. 딱 1년 동안 만났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걸로 그만이었다. 그녀의 언니가 동생의 실종을 알려주기 전까지는. 동생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언니 권문희를 만나는 동안 동고는 은화와의 추억을 하나씩 되돌아 짚어간다. 동고에게 여자를 만나는 의미는 무엇인가? 동고가 되어봐도 잘 알 순 없다. 동고에게는 배려는 있으나 차갑고 냉정하다. 여자가 해달라고 하는 것은 다해주지만 마음이 실리진 않는다. 겉으로는 완벽한 연애지만 상대는 언제나 결핍을 느낀다. 동고는 그것을 안다. 모르는 척할 뿐이다. 관계를 피하진 않지만 관계를 맺는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그것도 동고는 알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동고가 여자들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해석 해본다. 그래서 나는 동고라는 삼십 대 초반의 남자가 불쌍하다.

 

소설 속에서 이런 서툰 삼십 대를 보내는 사람은 여럿이다. 동고도 그러하지만 유란도, 권은화도, 권민희도 유란의 오빠 형규도 그렇다. 모두 개별적으로 보면 고통을 끌어안고 지금을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모두 위안이 절실하지만 정작 위안을 잘 찾거나 받거나 때론 주고받는 방법에는 매우 서툴다. 나의 삼십 대에 그랬던 것처럼.

 

1996년 작가 윤대녕이 서른네 살에 쓴 소설이다. 그 해 나도 비슷한 고통을 안은 채 힘겨운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때 내개 동고와 같은 남자가 있었는지 「추억의 아주 먼 곳」을 떠올려 본다. 이미 지난지 오래여서 인지, 이후 오래동안  비슷한 경험이 없어서인지 웬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동고나 은화 그리고 유란과 같은 심정으로 실체를 찾지 못하며 풍경 속에 헤매 돌았던 기억은 많다. 그 때 내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는 기억이 있다. 행복하고 충만한 표정을 지을만한 사정이지 않았다. 

 

그 시간을 지나 지금의 내가 있다. 지금의 내가 삼십 대를 걷고 있는 누군가에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잊지 말고 의식하며 나머지 인생을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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