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2021). 일기, 창비.
2023-40
황정은 작가의 산문은 처음인데 그녀 역시 처음이라는 에세이집.
창비의 도움으로 연재를 했던 글을 묶었다는데 어디를 가면 그녀의 글을 주기적으로 읽을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출판이 2021년이어서 언제 끝날지 요원했던 당시 작가는 어떤 생활을 했는지 무척 궁금했다.
파주로 이사를 했고, 읽기와 쓰기를 했다. 자신의 일인 소설을 쓰면서 정기적으로 일기 같은 글을 써서 연재했다. 동거인과 살고 앗고, 식물을 키울 수 있는 베란다를 갖고 있는 집에 살며 산책하고 달린다. 매일 근육운동을 하거나 스트레칭을 했다. 주로 하는 일들이 조금 달랐지만 작가라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
그녀의 글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었다. 하나 지금의 나는 그녀의 글을 굳이 색으로 표현하라면 짙은 회색이나 인디고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유튜브에서 본 그녀의 표정이나 사진을 봐도 그랬고, 자신의 얼굴을 굳이 상대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한 인상도 받았다. 뭔가 말하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것의 그녀 문학의 힘일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하곤 했다.
그랬던 내 인상의 이유를 <일기>를 통해 아주 조금 알았다고 하면 실례일까. 이것조차 나의 편견일 수 있겠으나 (미안한 말이지만) 어쩌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다만 모든 것이 그녀의 잘못이 아님은 확실하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나도 안다. 독자로서 나는 그녀의 글이 다양해지고 많이 나와 내 곁에 도달하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좀더 힘을 내기를 전해본다. 그녀가 지금보다 좀 더 나이를 먹기를 기다리고 싶다. 그 사이에 그녀는 많은 글을 쓸 것이고 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기꺼이 줄을 그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그녀가 인디고를 닮은 어둠에서도 당당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살기를 바란다. 아마 이렇게 용감한 그녀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 11편의 글 중에 인상에 남은 것을 정리해본다. 가장 많은 줄을 그은 것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음 아프게 읽었던 것은 <책과 책꽂이 이야기를 쓰려고 했지만>. 그나마 조카 이야기가 들어있던 <민요상 책꽂이>를 가장 무난하게 읽었다. 처음 <일기>에서 건강하라고 해서 코로나 상황에서는 누구나 건강이구나 싶었는데 마지막 부분의 <흔>과 <일기>에서는 다시 충격을 받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글이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기 때문에 그저 거리를 두기 어려웠음을 전한다. 언니 같은 마음에서 생각이나 얼굴에 남은 '흔'이 깊게 베인 상처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자연의 압도적인 규모와 느린 속도와 작고 풍부한 세부를 묘사하는 로렌아이슬리(광대한 영행, 강현구역, 2005)의 산문을 읽으면 지금 겪는 일들이 지나간 자리를 상상할 수 있고 허무없이 찰나를 생각할 수 있어 좋다. 이렇게 책을 읽는 일로 산란한 마음에 거리를 둔채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된 오늘, 이제는 전세계적인 일상용품이 된 마스크가 피에 흠뻑 젖은 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진을 보았다. 75쪽
산보하시나요
산보할 시간이 있나요
산보할 장소가 있나요
어디 사세요
거기선 산보, 가능합니까
이런 질문은 함부로 하면 안될 것 같다고 동거인은 말한다, 내가 모르는 남의 삶 조건을 기웃거리는 질문일 수 있다고. 그러게. 이런 질문으ㅗ 글을 한편 쓰려다 우무쭈물하고 있다(122쪽)
당신이 읽었다는 책들을 나도 읽고 싶어졌다.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은 너무 많아요.'
#도시를 걷는 여자들
#어린이라는 세계
#망명과 자긍심
#크리스티앙 보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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