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김주혜(2021), 박소현 역(2022), Beasts of Little Land, 작은 땅의 야수들, 다산책방.
2025-33
7/1~7/12 토요일 아침
603쪽의 길고 긴 장편을 7월 첫날 읽기 시작하여 7월 12일 토요일 아침(매미소리가 부드러워질 만큼 여름 바람이 시원한)에 읽기를 마친다. 긴 책을 읽는 것은 길고 긴 올레길을 걷는 것 같다. 스스로 선택해서 즐겁게 시작하지만 힘에 버거운 순간이 온다. 어느 순간 나른하게 지루해지다가 나도 모르게 그저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을 지나다 보면 깊이 빠져들어 마지막을 맞는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물러빠진 나의 감정은 기어코 눈에서 물 한 방울 생성하고 만다. 이게 유전자의 힘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삶은 견딜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에.
나는 진주를 옷 가방에 넣고 물가로 걸어 나왔다.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원한 청색 파도 사이를 둥실둥실 부유했다.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그 어떤 것에 대한 소망도 동경도 느껴지기 않았다. 나는 마침내 바다와 하나였다.(603쪽)
1918년 평양 10살의 옥희로 부터 1964년 제주 56살의 옥희로 이야기는 끝났다. 은실로부터 기생수업을 받던 평양의 열 살 옥희는 다시 서울에서 단이로부터 월향, 연화와 함께 기생으로 배우로 살며 사랑하고 성취하고 바뀌고 걸어 나가며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한국전쟁을 지났다. 사랑이었던 한철과 초조한 행복을 경험했다. 사랑이었지만 우정에 가까웠던 정호를 만났다. 이제 모두 떠나고 여전히 혼자 제주로 와서 철수의 보호자가 되고 풋내기 해녀가 되어 바다와 한 몸이 된다. 비로소 자유를 느낀다.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누군가는 스스로 죽어야 할 만큼 힘든 시간 속을 기어코 건너와서는 마침애 삶은 견딜만하다고 하고 살아볼 만하다 말한다.
과연 누구에게나 그런지 모를 일이지만 오늘 아침 나는 옥희의 말에 위로를 받는다. 어렵다고 느낄 때 불안하다 느낄 때 다가올 시간을 생각하며 자신감이 떨어질 때. 소설 속 강인한 여성이 이렇게 말해주면 나는 힘을 받는다. 작가가 하고픈 말들은 많았겠지만 나는 마지막 옥희의 말에 일단 살아가보자고 다짐한다. 나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므로.
P.S. 가만있자. 이민진의 <파친코>, 정세랑 <시선으로부터>이 생각났다. 옥빛이라 하나. 파랑이 남았다.
P.S. 긴 소설은 읽느라 문장을 찾지 못한다. 줄을 그을 생각조차 못하며 그저 읽어나가야 한다. 궁금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