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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이만큼 가까이

Jeeum 2025. 7. 12. 10:25

정세랑(2021). 이만큼 가까이, 창비

2025년-34

7/12 읽기 시작하다. 7/18 마치다

 

분명 어제 학교에서 책을 읽으며 남기고 싶은 문장을 적었는데. 아침에 보니 텅 비어 있다. 나를 위한 일인지 누군가를 위한 일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지점에서도 성실한 나는 열정의 가면을 쓰고 바빴다. 바쁘다는 이유로 저장 못한 문장들은 그저 어디론가 흘러나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어디에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허무해진 나는 이상한 고민을 잠시 한다. 여기에 문장을 다시 적어야 할지 아니면 적는 것을 포기할지. 포기하는 것은 쉽다. 안 하면 그만인 것을. 

 

정세랑의 성장소설 같은 이 소설을 재미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어느새 그 나이의 나도 똑같은 얼굴이었던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매일매일 자연스럽게 만나던 그 친구들은 또 어디로 갔는가. 친구들을 저장하지 않은 나의 무심함 때문에 누군가 친구였던 기억조차 그들과 매일매일 웃고 떠들고 울고 화내며 했던 무수한 일들이 저장하지 않은 정보처럼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는 채 사라졌다. 

 

파주 2번 버스의 오리지널 멤버 

나, 찬겸, 민웅, 수미, 송이 그리고 후발 멤버 주연 그리고 나의 사랑 주완

 

오리지널 멤버는 나, 송이, 수미, 민웅이 찬겸이였다. 주연이는 학기가 끝나갈 때쯤 전학 와서 타기 시작했다. 내가 그 사실에 대해 말하면 주연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변두리 것들이 텃세를 부린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주연이가 오기 전가 후가 너무나 다른 세계였기에 기억의 그 지점쯤 분명한 분절로 깃발이 꽂혀 있다.(22면)   

 

그 여자애가 2번버스를 탔다. 여자애가 웃지 않고 비참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므로 호감이 갔다. 웃어주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는 사람이라면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연이는 그렇게 2번 버스 멤버가 되었다.(39면)

 

나는 영화미술을 한다. 세트를 만들고 소품을 챙긴다. 간간히 친구들을 찍는다.  

찬겸은 전교일등 치과의사가 되었다. 여전히 혼자다. 전국을 다니며 일을 한다,

주연은 파주 출판단지 출판사 직원이 되었다. 책을 만든다.

송이는 승무원이 되었다.

민웅이는 나무시다. 명랑이 지나친 아이가 무던한 과수원집 아들이 되었다. 사과를 키운다. 

수미는 불행했다. 방임과 폭력을 휘두르는 가족과 산다. 

 


 

작가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인물이지만  이들은 친구다. 그러나 친구는 영원히 친구로 남기 어려운 사람도 영원히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 누가 떠나고 누가 남을 것인가? 누구를 붙잡아야 하고 누구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사랑한 주완은 수호(수미 동생)의 총에 맞아 쓰러지고, 삼촌과 수미가 수호를 묻어 버리려 하다 창용오빠에게 목격된다. 상처, 트라우마, 이별, 죽음보다 큰 고통을 안은 친구들은 찬 공기를 안고도 성장해나간다. 나이는 기다려주지 않으므로. 주완을 잃은 나도 주완을 안고 성장한다. 30대가 되었다.   

 


언제나 그렇다. 약속은 뭘까. 약속에 대해 성실한 나는 도서관 반납 기일 통지문자를 받고 바빠졌다. 애초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린 것도 습관에 지나지 않았다. 부른 배를 의식한 산책이 도서관이었다. 읽을 책을 잔뜩 저장해 두고도 버릇은 다시 2권을 들고 귀가했고, 빌린 기억도 없는데 2주가 흘렀다. 두권중 한 권을 부랴부랴 읽는다. 정리할 틈이 없다.

 

이제 3쪽을 남겨두고 있다. 괜히 울컥 했다. 30대의 나는 어떠했나? 그때 만나던 사람들은 누구였던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생각이 들어온다. 사람은 많다. 친구는 적다. 소설 속 나에게 있는 친구들은 이제 현실 속 내게는 없다.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 나는 누구와 살고 무엇을 하며 살고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살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살아졌다.(226면)

 

산다와 살아진다는 차이가 크다. 딱히 정의를 내리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살아간다와 살아진다는 연속선의 좌우 끝에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살것인가? 살아질 것인가? 두려운 것인가. 슬픈 것인가.

 

 정세랑작가의 소설을 오랫만에 읽었다.  2021년 <목소리를 드릴게요> 이후 처음이다. 한동안 생각이 <이만큼 가까이> 속에 머물 것 같다. 60대의 내가 나의 그때를 생각해볼 것 같다. 지금 내게 '뭐시 중한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귀중할 것 같다.  

 

"내 생각에 인간은 잘못 설계된 것 같아."

주연이가 말했을 때 아무도 '왜 또?'하고 반문하지 않았다.

"소중한 걸 끊임없이 잃을 수밖에 없는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았아."(225면)

 

맞다. 맞는 말이다. 이겨낼 수 없다. 그래서 사는 게 아니라 살아져야 할지도 모른다. 괜시리(?) 울컥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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