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2021).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창비.
이상국(2016).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창비.
이상국(2012). 뿔을 적시며, 창비.
이상국 시인의 시집 세 권.
시는 문장으로 말하지 않는다. 시는 단어로 소리로 말한다. 시를 읽는 건 단어와 음소의 운율에 모든 것을 맡기는 일이다.
나를 위한 변명
그가 오지 않는다.
때로 수돗가에 와 목을 축이고
어떻게 알았는지 고기 냄새가 나면
기척도 없이 문밖에 와 있기도 했다.
많이 아파 보였지만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구걸하지 않았다.
더러 먹을 걸 놓아줘도
내가 자리를 비키고 나서야 오랜 생각 끝에
먹이를 물고 사라졌다.
그는 주려도 개나 사람처럼
길들여지지 않았다.
버즘 먹은 길고양이,
그가 오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동네 빈집이나 조용한 어느 곳에서
어느 날 혼자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노력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도 알 것이다.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중, 24~25쪽>
유월
내가 아는 유월은 오월과 칠월 사이에 숨어 지내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유월에는 보라색 칡꽃이 손톱만 하게 피고 은어들도 강물에 집을 짓는다. 허공은 하늘로 가득해서 더 올라가 구름은 치자꽃보다 희다. 물소리가 심심해서 제 이름을 부르면 산을 내려오고 세상이 새 둥지인양 오목하고 조용하니까 나는 또 빈집처럼 살고 싶어서......
<달은 아직 그달이다 중 37쪽>
틈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는
한겨울에 뿌리를 얼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위에 틈을 낸다고 한다
바위도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몸을 내주었던 것이다
치열한 삶이다
아름다운 생이다
나는 지난겨울 한 무리의 철거민들이
용산에 언 뿌리를 내리려다가
불에 타 죽는 걸 보았다
바위도 나무에게 틈을 내주는데
사람은 사람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
틈
<뿔을 적시며 중 85쪽>
시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시를 즐기고 싶다. 제대로 안다면 제대로 즐길 수 있겠지만 아직 잘 몰라서 나름대로 즐긴다. 조용히 야금야금 즐기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시도 가까운 동무처럼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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