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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사소한 그늘

Jeeum 2025. 10. 4. 06:34

이혜경(2021). 사소한 그늘, 민음사.

 

2025-55

10/4~10/8

 

연휴는 밀어두었던 책을 하나씩 읽어가는(정리하는) 날. 아픈 누군가를 핑계로 들뜬 나들이를 계획하지 못하는 일상. 그 빈 속을 익숙한 것들로 채워나간다. 내돈내산의 책들도, 도서관에서 충동적으로 계획적으로 빌려둔 책들도 여전히 서가에  쌓여있다. 아는 사람은 안다. 무엇이든 하면 할수록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많아진다는 것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고 싶은 것들이 쌓여간다. 아직 익숙하지 못한 그리기가 자꾸 뒤로 밀려나간다. 그리기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사소한 그늘>. 존재에는 언제나 존재만큼의 그늘이 존재한다. 사소한 그늘은 없을 듯 한데 사소해야 하는 그늘도 있을지도. 사소한 것이 때론 엄청 큰 영향력으로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소설을 읽지 않는 상황에서 묘한 상상이 조금씩 커진다. <저녁이 깊다>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던 작가의 새로운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첫 문장(7쪽)

 

지선은 전화기를 노려보고 있다. 검은 몸체에 0부터 9까지의 숫자가 동그라미에 갇힌 송수화기를 들고, 저 번호들에 손가락을 끼워 넣어 돌린다. 지선의 머릿 속에 간밤의 꿈이 스친다.

 

마지막 문장(319쪽)

 

언니들에겐 그런 기억이 없는 걸까. 그래서 그렇게 잊고 있는 걸까. 맞을 만한 짓을 했으니 맞는 거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칼질하는 손길에 힘이 들어간다. 종말 앞둔 지구에서 사과나무 묘목을 챙기듯. 지선은 저녁상을 준비한다. 가리라. 곧 가리라 다짐하면서. 또 다른 해가 있는 곳, 크든 작든 저마다 나름대로 해여서, 서로에게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 곳으로. 이미 깃든 그늘을 걷어 내며.

 

김혜진 소설가의 서평

 

이 소설은 나보다 내 어머니 세대에 가까운 경선과 영선, 지선 세 자매의 이야기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졌던 차별과 억압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뿌리 깊은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침묵하고, 망설이고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러나 도저히 자신의 것이 되지 않던 삶에  마침내 되찾으려는 막내 지선의 용기 있는 결단에 다다르면 우리는 이 소설이 다만 우리 윗세대 여성들의 상실과 좌절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선의 삶에 깃들어 있는 고요하고 끈질긴 갈등과 저항의 면면들을 따라가는 것은 아프지만 벅차고 안타깝지만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각자의 삶에 드리운 그늘의 너미와 깊이는 각기 다르지만 그 그늘을 벗어나는 데에는 존재를 걸 만큼의 큰 각오가 필요하고,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된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자시금 깨닫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한마디 했다. "지선아, 힘내." "지선아줌마, 힘내요. 괜찮아요."

 

덧붙여

 

엄청난 의성어와 의태어들

 

비죽비죽, 헤심헤심, 아슴아습, 간질간질, 바삭바삭. 바작바작, 설렁설렁, 초롱초롱, 차락차락, 뽀글뽀글, 맨들맨들, 구깃구깃, 꾸깃꾸깃, 차근차근, 동글동글, 핑글핑글, 뭉게뭉게, 잘근잘근, 바글바글, 부글부글, 덕지덕지, 살랑살랑, 얼름얼름, 알통달콩, 들쑥날쑥, 토닥토닥, 질끔질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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