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TRIP

제주 올레 14-1

Jeeum 2020. 10. 16. 13:33

제주 올레 14-1 저지-서광올레 : 서남부 중산간 숲의 생명력이 넘치는 곶자왈 올레

 

제주 올레 전 코스

 

2020년 9월 20일, 오전 10시

 

저지문화예술 정보화마을에서 14-1코스 출발점 스탬프를 찍었다.

코로나19로 몇 달 쉬었다가 새로운 시작이라서 일까?

마음이 두근두근 셀렌다.

 

저지마을회관은 올레 14, 14-1, 13코스가 시작하거나 끝나는 곳이다.

오늘을 포함해서 앞으로 적어도 두 번 더 이곳에 서야 한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가게들이 가득해서

활기가 넘치는 거리이다. 눈여겨 봐두자^^

 

길 건너, 엄마김밥에서 따뜻한 김밥 두줄을 샀다.

 

 

걷기 시작하는 곳에 이런 글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나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지나간다.

 

 

지난 5월, 비와 바람 때문에 아픈 친구와 걷기 힘들었다.

 

걷기를 포기하고 자동차 드라이브로 만족해야 했던 곳이다.

출발점에 서니 그 친구가 그립다.

안부 문자를 보냈다.

목디스크가 재발해서 꼼짝을 못한단다.

이런~~ 괜히 연락했나보다.

 

친구에 대한 걱정을 옆구리에 감추고

새로운 친구와 걷는다.

젊고 씩씩한 친구는 성큼성큼 앞서 걸어나간다.

 

여기서부터

저지곶자왈까지 4.1킬로미터

 

하늘도 햇살도 최고이다.

오랫만에 기분좋게 걸어보자.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제주한달살이> 엄마집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엄마집이란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다.

걷고 싶을 때 걸을 수 있는 자유를 선물로 남겨준

울 엄마 얼굴이 겹친다.

 

엄마!

보고싶다.

 

돌담 너머 청귤밭, 돌담 아래 분꽃, 돌담 사이 콩넝쿨,

그리고 맨드라미,

주렁주렁 호박덩이 모두

엄마를 기억나게 한다.

 

 

소란한 어린 시절의 한때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인생을 지날 때는 언제나 추억과 함께 간다.

그래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좋은 기억이 내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나무에 걸린 파랗고, 빨간 리본을 따라 간다.

제주의 하늘과 바다색을 벗삼아 간다.

 

산뜻한 리본이 우리를 안내해 줄것이다.

 

 

한라산의 심장을 닮은 땅을 밟고 간다. 

그 땅에 콩짜개가 가득 피어있다.

밟기도 미안하다. 작은 이파리의 생명력이 놀랍다.

 

사람이 떠난 빈 집들을 지나고,

멋진 RV 자동차가 주차된 잔디 깔린 이쁜 집을 지난다.

 

황토빛 땅에 줄지어선 고랑을 따라

생명을 심는 아낙의 곁을 지난다.

열심히 땅을 일구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푸른 하늘과 붉은 땅의 나라

 

여기는 저지곶자왈이다.

 

멀리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리는

커다란 바람개비가 보인다.

하늘, 땅 사이에 줄지어선 힘찬 날개에서

오늘따라 더욱 세찬 에너지가 뿜어나오는 듯하다.

깨끗한 에너지가 주는 평화로움이 감사하다.

 

저지곶자왈에는 이쁜 꽃들도 가득하고

높이 솟은 나무가 만든 그늘이 가득하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건강한 말들의 근육이 그득하다.

 

 

드디어 문도지 오름의 입구에 섰다.

바다와 귤빛 화살표가 반갑다.

키작은 파랑 간세의 몸에 14-1 코스 문도지 오름이라는 글씨가 반갑다.

인증샷을 찍어 가족에서 안부를 전한다.

'내 동생 화이팅'

오빠의 문자가 더욱 좋다

 

 

문도지 오름에는

말이나 돼지들을 방목하는 목장이 많다고 들었다.

목장길 따라 걸으며

사유지를 허락해준 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준 사람들

고맙다.

 

소리도 지르지 말고 쓰레기도 가져가 달라고 한다.

 

올레 신입생이지만 지킬 것은 지키자.

얘기는 소근소근

걸음은 사뿐사뿐

 

유난히 푸른 하늘덕에 신나게 걷는다.

 

문도지 오름 정상에서는 멀리 바다가 보이고 한라산도 보인다.

하늘과 맞다은 오름과 땅, 바다가 만드는

지평선이 보이는 곳

 

여기는 제주이다.

 

문도지 오름 정상에서 1

 

문도지 오름 정상에서 2

 

드디어 문도지 오름을 내려왔다.

마지막 사유지의 문을 닫고, 살짝 내려서니

정겨운 중간 스탬프 간세가 수줍은 듯 기다린다.

 

힘겹게 걷다가 찍는 작은 스탬프가 주는 즐거움은

더할 나위 없다. 

 

하하하^^ 드녀 또하나의 스탬프를 추가한다. 야호!!

 

   퍼질고 앉아

저지마을의 엄마가 만든 김밥을

맛있게 먹는다.

 

처음 걷는 친구에게 올레를 걸으며 느꼈던 기분을 전달해주었다.

슬슬 올레꾼이 될 듯하다.

 

이제부터는 또다른 곶자왈

월평-서광 곶자왈이다.

안내서에는 절대 오후 2시 이후에는 들어가지 말고,

길을 잃기 어려우니 조심하라고 적혀있다.

괜히 긴장된다.

 

다시 걷는다.

숲길로 들어서기 전에 넓고 편한 길을 걸어간다. 

가방도 가벼워지고,

기분도 가볍다.

평평한 아스팔트를 잠시 걷는다.

 

 

작은 노란 나비 한마리가 따라온다.

가만보니 한마리가 아니라 여러마리다.

얘들아, 안녕^^

 

 

이제 숲길로 들어선다.

백서향 군락지라는 표지판에 보인다.

 

거북선, 범선 다양한 배들의 모형을 모아놓은 곳이

숲의 입구인가보다.

길을 잃지 않도록 바닷빛 리본을 잘보며 걸어야 한다.

 

건강한 파트너가 있어 든든하다.

인생에도 든든한 파트너는 언제나 필요한 법이다.

 

 

곶자왈 숲

원시림

 

이곳에서는 나무 사이로 길만 보며 걸어간다.

바닥이 좁은 돌길이어서 조심조심 긴장하며 걷는다.

 

나무들마다 공생 식물이 무성하다.

돌과 바닥에는 싱싱한 이끼들이 가득하다.

깊은 숲임을 알려주는 표시이다.

 

사람들이 걷기 힘든 숲속에서는

동물들이 훨씬 편하다.

그들이 시원하게 내뱉은 응가가 가득하다.

길을 따라 여기저기 제각기 다른 온도의 똥들이.

방금 지표면으로 내밀린 것을 밟으면 안된다.

 

숲길에서도 잘 걷는다.

친구는

젊음이 살짝 부럽다. 

 

곶자왈을 대표하는 나무들에는 친절하게 표지도 달려있다.

 

4.3의 아픈 기억이 담긴 <볏바른궤>를 지난다.

아프게 가신 이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올레의 길이는

얼마되지 않지만

깊은 숲 속

빛이 적어서 일까?

바닥에 돌이 많아서 일까?

걷기 힘들다. 이제 그만 햇살을 받고싶다.

그러나 여전히 숲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사.이

 

어느 순간

광활한 차밭이 어둠 속에 빛처럼 느닷없이 나타난다.

14-1코스의 종점을 알려주는 파랑 간세가

오설록 티뮤지엄이라는 글자를 품고 귀엽게 서있다.

 

이렇게 갑자기 끝나다니...

 

인생이란 이런거다. 역시.

 

곶자왈을 거쳐왔다는 뿌듯함보다

아쉬움이 진하게 몰려온다

 

익숙한 차밭의 모습은 마치 가족같다.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친구와 하이파이브를 한다.

드디어 또하나의 올레를 지났다.

방금 지난 온 9.3km의 길이 아득하다. 

 

 

서명숙 이사장의 책

'서귀포를 아시나요'에 인용된

알랭 드 보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아무리 느리게 걸어 다니면서 본다 해도

세상에는 늘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

사람의 기쁨은 결코 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데 있기 떄문이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왜 걷느냐고 묻는 것은

왜 사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나도 모른다. 그냥 걸을 뿐이다.

쉬멍, 놀멍 가더라도 걸어가야 한다.

걷는 동안 지나는 것들을 하나씩 거두면서...

 

이게 살아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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