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TRIP

제주 올레 17코스 1

Jeeum 2020. 12. 12. 21:09

제주 올레 17코스 광령-제주원도심 올레

 

시작점 : 광령1리 사무소 앞

중간점 : 어영소 공원

종점 : 관덕정 분식 & 간세 라운지

 

 

또 한달이 지났다.

제주로 가는 날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여행 동무들의 발목을 잡았다.

 혼자 떠나기로 했다.

 

 

컴컴한 대구를 출발했다.

독서를 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비행기는 하얀 숲 속을 천천히 날고 있었다.

지루할 틈도 없이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제주공항 도착 라운지의 돌하르방이 마스크를 한 채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산타클로스 모자에 목도리까지 쓰고 있다.

겨울을 닮은 포인세티아와 함께 

 

2020년 혹독한 마지막 한달을 모두 조마조마 한 마음으로 지나고 있다.

 

 

붕붕이를 만났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붕붕거린다.

시야마저 너무 좁다.

 적응에 시간이 다소 걸릴 듯 하다.

 

2킬로 남짓 달리는 동안 작은 차 안이 너무 조용하다.

예정대로라면 세 명의 여성이 타고 있어야 했다.

결국 혼자다.

 

홀로이지만 함께인 듯한 느낌.

 

We're all alone, but together.

 

 

 

관덕정분식 간세라운지에서 곶자왈 스카프를 사고,

새로운 스탬프를 찍었다.

17코스 제주 올레길을 걷기 시작한다는 표시이다.

친절한 점장이 잘 다녀오라고 한다.

정겨운 목소리가 마치 언니 같다.

 

오늘은 역방향.

귤빛 리본이 12월의 바람에 팔랑거리는 신호를 따라 걷는다.

 

올레의 시작은 늘 서투르다.

도심에서는 더욱 그렇다.

선명한 빛깔도 

금방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구도심이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닮았다.

이 곳에서 유년을 보낸 이들은

어떤 모양의 추억으로 이곳을 기억하고 있을까?

 

 

길을 잃었다.

관덕정을 오른쪽으로 끼고

문근성 방삿길이라는 안내판을 확인하고 곧장 걸었다.

갑자기 리본도 화살표도 사라졌다.

같은 곳을 몇 번이곤 걸었다.

마지막 본 리본 아래 서니 비로소 10시 방향 벽에 귤빛 화살표가 나타났다.

 

 

삶에서 길을 잃을 때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살아가는 지혜이고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길을 잃은 덕분에

제주 북초등학교가 100년을 넘는 역사관을 갖고 있는 학교라는 것을 배웠고,

기념관과 나란히 자리한

김영수 도서관은 격자무늬 창을 가진 한실과 양실이

절묘하게 조화를 갖춘 멋진 디자인의 도서관이라는 것을 알았다.

학교와 도서관이 얼마나 긴 세월을 딛고 왔는지

도서관 앞

노송이 세월을 닮은 모양으로 이리저리 휘었지만

결국 하늘로 뻗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방황과 선택이 일상을 살려내는 양념이라면

기본으로 가는 것은

고집스럽게 본연의 맛을 지키려는 국물인걸까?

하하하^^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말도 안되는 말이다.

 

 

무근성 마을을 지나니

렌트카들이 여기저기 주차되어있다.

근처에

맛집이 있다는 표시이다.

 

아니나 다를까?

맞은 편에

우리말로

 

산도위치

(#공항근처맛집 #제주구도심맛집)

라고 적혀있다.

 

 

뭐야?

한글이지만 일본말이다.

지나쳐 걸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누런 봉지를 들고 들떠있는 사람들이 이어지고

맞은 편 김만복 김밥집 앞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되지 않아 내처 걸었으면 했지만 

결국 마음이 발걸음을 되돌리게 했다.

 

타마고산도에 따뜻한 커피

 

타마고는 우리말로 계란

샌드위치 속 계란말이는 엄청났다.

 

배가 부르니 마음도 부르다.

커피는 뱃속깊이 온기를 넣어 주었다.

 

이제 바다길로 들어선다.

<동한두기>라는 반듯한 글자가 바다와 하늘의 푸름을 배경삼아 서있다.

바람에 부서지는 파도가 무색의 불꽃놀이 같은데

하늘마저 너무 푸르러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거친 파도를 좋아한다던 사람이 생각나 영상을 떠보냈다.

언제나

그녀와는 타이밍이 어긋나버린다.

오늘도 역시 답이 없다.

종결형을 좋아하는 그녀는

주고받으려 하지 않는다.

 

 

용연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면 용두암이다.

많은 사람이 찾는 장소에는 공원도 있고, 전망대도 있고,

바다 가장 가까운 바위에는 추위를 이기는 해녀도 있다.

이쁜 꽃들도

파도를 만드는 바람과 함께 흔들거리고 있다.

 

 

오른쪽으로 바다을 끼고

왼쪽으로 공항을 끼고 계속

바당길을 걷는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끼고, 목도리를 하고

겨울 속을 걷는다.

햇살이 따갑다.

 

 

하늘로 계속 비행기가 날아오른다.

유선형의 거대한 동체 속에 추억과 사연을 담고

제주를 떠나는 이들의 속삭임이 하늘로 퍼져 나간다.

 

 

어영마을을 지나고

드디어

중간스탬프를 찍는 어영소 공원에 이르렀다.

 

또하나의 스탬프!!

이 맛에 걷는 것일까?

스탬프를 품고 있는 짧은 다리 조랑말 간세를 사랑한다.

 

 

귤빛 리본이 바당길을 따라 이어진다.

이젠 덥다.

겉옷을 벗고

맨투맨 하나로 충분하다.

 

걸어도 걸어도 바다는 계속된다. 바다니까

공항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공항이 큰지 처음 알았다.

 

하늘 속에 있을 때 비행기는 그저 가볍게 떠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땅을 밟을 때 나오는 엄청난 소리와 압력을 통해

그저 떠있는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거대한 존재일수록 소리없이 숨어있다

필요할 땐 거침없이 거침없이 에너지를 내뿜는다.

 

사람의 다리로 두 세 시간 열심히 걸어야 겨우 닿을 수 있는 먼거리 거리를

한숨에

창공 속에 부드럽게 발을 내리고도

저렇게 빠른 속도로 내리고

날아올랐던 것이다.

 

그저 편리함에 무심히 타고내렸던 비행기의 힘겨운 노동이

왠지 안스럽다.

 

안녕! 비-행-기야.

언제나 고마워! 나를 제주로 데려다 줘서^^

 

드디어 바당길이 끝이 났다.

 

도두봉 입구이다.

 

장안사 앞 편의점에서

점심 도시락과 같이 먹을 캔 음료수를 샀다.

언덕을 오르며 보니

장안사의 풍경도 육지의 절집을 똑같이 생겼다.

당연한 일인가?

 

 

도두봉 정상이다.

하늘이 한층 더 가까이 보인다.

더욱 푸르러 보인다.

 

섬의 머리라는 의미의 도두봉

제주시에 가까운 작은 오름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아주 멋지다고 안내서에는 씌여 있다.

 

 

바싹 마른 갈대잎이 버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와 하늘이

약 8킬로를 걸어온 나의 수고에 위로를 전해준다.

 

 

올레 리본 뒤로 보이는 바다

그리고 빨간 등대를 보며 도두봉을 내려왔다.

 

도두봉 입구에서

도두항과 갓 잡아올린 물고기를 옮기는 어부들의 힘찬 고함을 들으며

점심을 먹었다.

 

 

가벼워진 가방

휴식으로 이완된 다리를 딛고

도두항교를 오른다.

 

자연만의 광경을 담은 바다도 좋지만

부두의 배와 어부들

생선창고의 인부들의 땀내 날듯한 부두의 활기도 좋아보인다.

 

 

바람따라 제멋대로 흘러가는 구름들도 왠지 웃고 있는 것 같은

이 같은 풍경도 왠지 정겹다.

 

 

말뚝받기

딱지치기에

굴렁쇠 돌리는 소년까지

이게 뭐야 했더니

 

 

도두 추억애거리 였다

 

 

거꾸로 걷는 것은 이런 것인가?

 

겪은 다음 이름을 알아 물어보는 관계도 나쁘지 않다.

 

 

멀리 이호테우 해변의 조랑말을 닮은 빨강 하양 등대가 보인다..

일단 저기까지 걸어가보자.

 

거친 바다를 이웃삼아 오랜동안 살아온 이곳 사람들은

바다가 거칠면 화가 났다고 생각하고

바다가 잔잔하면 기분이 좋은 거라 믿었다.

때문일까?

배를 타고 나간 남편의 무사귀환을 빌며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바닷속을 뛰어들던 해녀엄마와 아내를 위해

바닷마을에는

바다를 달래기 위한 할망당이 어디나 존재했다.

 

 

이호테우 등대를 멀리보며 해수욕장을 지난다.

해수욕장 뒤로 소나무 숲의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이제 바다를 살짝 벗어나라는 간세의 고개짓을 따라 간다.

현사마을이라는 돌문패가 보인다

 

 

싱싱한 양배추가 가득한 밭이 건강해 보인다.

배불리 먹어도 위가 좋아할 듯 하다.

 

 

다시 바다이다.

 NAEDO

ALJAKJI BEACH

 

 

 

내도 바당길이다.

알작지 해변까지 야트막한 방파제에 흥겨운 그림과 낙서가 이어진다.

 

첫날 17코스 12킬로의 올레는 여기까지이다.

당일치기 올레는 싫어도 힘들어도 무조건 끝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난 3일 꼬박 이 섬에 있을 것이다.

 

마침 택시가 달려온다.

 

"신라스테이로 가주세요."

 

여행 첫날의 피로를 풀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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