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2016).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1984년생 젊은 작가의 소설집. 중단편 7편이 수록되어 있다. 읽기를 마친 느낌은 따뜻하다. 유난히 추운 날이 계속되던 겨울 속에 베란다 가득 종일 머무르는 햇살처럼 기분 좋은 따스함이 남는 작품이다.
7편 모두 여성의 시점에서 씌여있다. 할아버지와 손녀, 할머니와 손녀, 엄마와 딸, 친구 간의 얘기에 연하지만 섬세한 문장으로 가득하다. <씬짜오 신짜오>에서는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행위가 야기하는 아픔이 관계를 파괴하게 되는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하였고, <미카엘라>와 <비밀>은 세월호 희생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모두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지만 잊고 있다가 소설을 읽으면서 괜히 눈물이 났다. (요즘 소설을 보며 잘 운다. 이것도 나이 탓??)
<쇼코의 미소>는 할아버지, 나(소유) 그리고 일본인 쇼코의 이야기. 마음의 병을 앓았던 쇼코에게만 털어놓았던 할아버지의 절박한 속마음, 마음병을 보지 못한 체 잘난 척하던 소유, 아픔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쇼코. 벼랑에서 다시 만난 쇼코와 소유. 쇼코는 소유로 하여금 가족의 근원으로서 할아버지를 느끼게 해 준다.
30대의 작가가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그리는 것이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들의 유아 청소년 시기에 바쁜 부모를 대신해 이들을 키워준 것이 조부모였던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먼 곳에서 온 노래>는 죽은 노래 동아리의 선배가 살던 러시아의 페테스부르크에서 그녀의 영혼을 만나고, 그녀의 친구인 율랴와 그녀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이렇듯 소설집 전반에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관계들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주고 있다. 그래서 따뜻하다고 느끼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가고 벌써 일 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릴 때마다 엄마가 선택한 죽음의 시기가 얼마나 현명한 것이었던가 생각하며 부끄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삶의 기준도 행복의 기준도 너무나 달라져 버린 지난 일 년의 세상을 생각하던 며칠 동안 엄마를 생각하며 함께한 소설이 이 책이어서 매우 다행이었다. 지나치게 슬프지 않았고, 읽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감사한 소설이다.
첫째, <쇼코의 미소>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렇게 박려버린 삶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28쪽)
비행기는 낮게 날았다. 맑은 날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현해탄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멀리서 본 사물은 티없이 아름답기만 했다.(30쪽)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영화 일이 꿈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꿈을 쫓았다면 나는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감독이 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영화에 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건 착각이었다.(33쪽)
둘째 <씬짜오, 씬짜오>
엄마 그때 참 예뻤어. 언젠가 내가 그렇게 얘기했을 떄 엄마는 그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그래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서자 밤 열시가 넘어도 대기에는 초저녁처럼 희미한 빛이 남아 있었다. 빛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눈앞의 풍경이 푸른빛에 잠길 떄의 모습을 나는 좋아했다. (71쪽)
셋째,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읽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116쪽)
넷째, <한지와 영주>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런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164쪽)
여섯 번째 소설 <미카엘라>
다수의 선한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세상을 망친 디고 아빠는 말했었다. 아빠의 말은 맞았지만 그녀는 이런 세상과 싸우고 싶지 않았았다. 승패가 뻔한 릴 위에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세상이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수그리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고, 자신을 소외시키고 변형시켜서라도 맞춰 살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부딪쳐 싸우기보다는 편입되고 싶었다. 세상으로부터 초대받고 싶었다.
마지막 소설 <비밀>
나도 언젠가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여자는 언젠가 제 품에 안길지도 모를 손주 생각으로 가슴이 벅찼다. 아직도 인생은 여자에게 새로운 꿈을 열어 보여줬다. 희박한 가능성에 불과한 꿈이 었지만 그 꿈이라는 것을 마음에 품고 있으니 생활에 활기가 돌고 밥맛이 좋아졌다.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필요하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헤어롤을 마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와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남편이 있는가 하면 집안일을 하며 아이들 돌보는 남편도 있다, 여자는 세상을 살며 그처럼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깨끗한 샘물 같은 그에게 더러운 욕탕이 되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세상에 소용없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는 세상의 그 많은 소용 있는 사람들이 행한 일들 모두가 진실로 세상에 소용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228쪽)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라들을 머너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 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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