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2012).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제주편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창비.
낯선 곳에 가면 긴장감을 주던 일상과 멀어졌다는 기분 하나로도 편한 느낌이 든다. 눈 앞에 신선한 풍광까지 더하면 그저 아무 생각없이 그 공간이나 장소에 잠시 머문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난다. 그러다 시간이 가면 그 떄의 기억은 연해지고 왜곡되기도 한다. 이것이 여행이다.
작년부터 제주 올레를 걷고 있다. 코로나 19로 거르는 경우도 다반사였지만 가능한 달에 한번은 걸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다 어느새 8개의 올레를 걸었다. 제주 올레를 걷다 보면 맑은 공기와 바람에 숨통이 트이고, 짙은 물감을 풀어놓은 하늘과 바다가 친구가 되고, 우주의 중심처럼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는 한라산의 닿지 못할 자태에 취하게 된다. 그래서인가 마을길이나 밭길 그리고 산길 등 제주의 흔한 길에서 쉽게 만나는 돌담과 풀, 나무에도 애정이 가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을 해도 늘 마음이 분주하다. 이렇게 좋은 제주 올레길에서는 느긋해도 될터지만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걸어야 할 길이 멀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경사진 오름을 오를 때도 아름다운 바닷길과 제주인의 사연이 담긴 마을길이나 밭길을 걸을 때도 제대로 주위를 즐기지 못하고 걷기에만 바쁘다. 마음의 여유를 찾고, 내 자신을 들여다 보려 시작한 걸음이었것만 끝까지 가야한다는 맘에 오히려 여유를 놓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한 코스의 걷기를 마친 뒤 가득한 사진을 정리하면서 자료를 살펴보면, 걸으면서 꼭 봐야 할 것들 혹은 느껴야 할 것을 놓친 채 그저 바쁘게 걷기만 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된다.
부끄럽지만,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제주편이 있는 줄 이제서야 알았다. 읽기를 시작하자마자 진작 읽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걸었던 올레길에서 몰랐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책을 읽는다고 모두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부지런히 읽고 있다. 부지런히 읽지만 진도가 빠르지는 않다. 인용된 인물, 장소, 책 등이 나올 때마다 줄을 긋고, 검색해보고, 메모를 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작년 1월 처음 걸었던 올레는 마지막 올레 21코스였다. 같이 걷기로 했던 친구가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고, 걷기에 완전 초보였던 나는 겁을 내어 난이도 하의 21코스를 선택했다. 해녀박물관에서 시작해 종달리까지 걷는 것이 21코스였다. 종달리라는 지명의 경쾌함, 그곳 수국길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린 것도 선택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종달리'가 경쾌함을 주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끝에 도달한 동네'라는 의미임을 알았고, 그것이 '제주 올레'가 21코스를 마지막 코스로 정한 이유임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는 것 만큼 보이고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조금 늦었지만 이 책은 내가 올레길을 걷는 동안 많은 것을 가르쳐 줄것이다. 내가 매월 어디를 걸어야 할지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제주인이 아닌 여행자인 내가 그저 사진으로만 남을 기억으로서의 제주가 아니라 누군가의 애닮은 삶이고, 생명의 터전이고, 아픈 역사였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그저 감사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2021. 0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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