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2015). 문학이 사랑한 꽃 들, 샘터.
33편의 한국문학 속 야생화 이야기
잔뜩 흐렸던 지난 목요일. 난데없이 일정이 빈 시간.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들렀다. 도서관에서는 근무자 이외에 근로학생들만 잔뜩 앉아 책 대신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2층 문학도서와 잡지 코너는 오로지 나만의 세상. 덕분에 한참 느긋하게 책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제목이 '문학이 사랑한 꽃들'이었다.
'문학',
'꽃'
내가 사랑하는 주제가 두 개씩이나 들어 있다. 눈에 익은 작품에 대한 글이 등장했던 꽃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무척 재밌을 것 같아 뽑아 들었다. 지금은 방학이니 실컷 이런 시간을 즐겨도 되겠지.
"테마가 있는 여행' 처럼
문학작품을 좋아하는 꽃을 중심으로 한 저자의 시선이 새롭다.
제 1 부 꽃, 청춘을 기억하다
1. [ 벚꽃 ] 김연수 <벚꽃 새해>
벚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말하자면 오늘은 벚꽃 새해.
2. [ 도라지 ] 김애란 <두근두근 내인생>
요 며칠 아빠랑 절에 있었어.
아빠가 요새 대체요법에 관심이 많거든.
근데 거기 스님이 나더러 도라지꽃같이 생겼다고 하더라.
3. [ 쥐똥나무 ]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결국 한 그루의 쥐똥나무만 한 스트레스가 서로의 마음속에 자라나 버렸고,
급기야 서로가 어우러진 울창한 쥐똥나무의 숲이 형성되어 버렸다.
4. [ 미국 자리공 ] 김형경 <꽃피는 고래>
5. [ 난 ] 정은궐 <해를 품은 달>
귓불에 송송이 박힌 솜털이 입술에 먼저 와 닿았다.
귓불에도 난향이 배어 있었다.
제 2부 꽃, 사랑을 간직하다
1. [ 장미 ]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
서른한 살. 토요일 저녁, 왼손에 장미 한 송이를 든 채 햄버거를 사기 위해 패스트푸드점 카운터 앞에
줄 서기에는 약간, 아주 민망한 나이다.
조금 아까 만나자마자 태오는 내게 장미꽃을 쑥 내밀었다.
2. [ 용버들 ] 구효서 <소금가마니>
그날 마을 사람들과 아버지는 용내천을 가로질러 쓰러져 있는 커다란 용수 버드나무를 발견했다.
금방 잘린 듯한 나무 밑동 곁에는, 손잡이에 핏물이 밴 낡은 톱 한 자루가 버려져 있었다.
그날을 회상할 때마다 어머니는 깊이 파인 손바닥의 상처를 들여다보곤 했다.
3. [ 협죽도 ] 성석제 <협죽도 그늘 아래>
4. [ 자귀나무 ] 윤후명 <둔황의 사랑>
자귀나무 꽃송이를 코 끝에 가져가 보면 부드러운 감촉도 좋다. 꽃이 피었을 때 엷게 퍼지는 향기도 맑고
싱그럽다. 자귀나무 꽃을 말려 베갯속에 넣어두면 향긋한 꽃향기 때문에
머리가 맑아진다고 한다.
5. [ 영산홍 ] 오정희 < 옛 우물>
여름 한낮, 천년의 세월로 퇴락한 절마당에는 영산홍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영산홍 붉은빛은 지옥까지 가닿는다고
꽃빛에 눈부셔하며 그가 말했다.
5. [ 함초 ] 권지예 <꽃게 무덤>
넓은 갯벌엔 무리 지어 자생한 자줏빛 함초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아주 넓은 자주색 비로드 치마가 펼쳐진 것 같다.
제 3부 꽃, 추억을 간직하다
1. [ 싱아 ] 박완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었다.
2. [ 배초향 ] 김향이 <달님은 알지요>
아빠 냄새도 이럴까?
송화의 뺨에 발그레 꽃물이 들었다.
cf. 배초향이 방아라 한다.
3. [ 사과꽃 ] 은희경 <새의 선물>
가슴이 설레는 걸 보면
진정 나는 사랑에 빠진 모양이다.
과수원이 가까워질수록 꽃향기가 전해진다.
사과꽃 냄새다.
4. [ 민들레 ] 김중미 <괭이부리말 아이들>
공장 철문과 벽돌담 사이이에 있는 좁은 틈 사이로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 있었네.
어! 새싹이네
5. [ 사철나무 ] 전경린 < 강변마을>
허리가 굽은 늙은 사철나무들은 매달리기 좋게 옆으로 구불구불 가지들을 뻗었고
총총한 잎사귀 속에는
붉은 열매들이 조롱조롱 달려 있었다.
6. [ 상수리나무 ] 위기철 <아홉 살 인생>
나는 숲에서 키 작은 상수리 나뭇가지를 타고 노는 걸
아주 좋아했다. 그 상수리 나뭇가지는
아이들이 말처럼 타고 놀기에 좋도록
적당히 휘어져 있었다.
7. [ 냉이꽃 ] 권정생 <몽실언니>
냉이꽃이 하얗게 자북자북 피었다.
골목길은 너무도 환하고 따뜻하다.
제 4부 꽃, 상처를 치유하다
1. [ 박태기나무 ] 문순태 <생오지 가는 길>
길 건너 전봇대 옆 박태기꽃이
햇살 속에서 빨긋빨긋 꽃망울을 터뜨린 것이 눈에 들어왔다.
2. [ 조팝나무 꽃 ] 이혜경 <彼我間(피아간)>
목을 감고 대롱대롱 매달리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타박타박 걸어 나오던 봄날.
야산 어귀엔 조팝나무가 축복처럼 하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중략)
야산과 들길과 만나는 지점, 그곳에만 이르면 무슨 세례라도 주는 듯 맑은 향기가 끼쳐왔다.
3. [ 등꽃 ] 이금이 <유진과 유진>
4. [ 엉겅퀴 ] 임철우 <아버지와 땅>
해마다 머리맡에 무성한 쑥부쟁이와 엉겅퀴꽃을
지천으로 피워내며 이제 아버지를 어느 버려진 밭고랑 어느 응달진 산기슭에
무덤도 묘비도 없이 홀로 잠들어 있을 것인가
5. [ 청미래덩굴 ] 현기영 <순이삼촌>
밥을 지을 때 연기가 나면 발각될까 봐 연기 안 나는 청미래덩굴로 불을 땠다.
청미래덩굴은 비에도 젖지 않아 떌감으로는 십상이었다.
6. [ 치차 꽃 ] 정미경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치자꽃을 오래 바라보았다.
어지러울 만큼 다디단 향을 내뿜는 데도 꽃은 어딘가 처연해 보였다.
제 5부 꽃, 인생을 그리다
1. [ 진달래 ] 양귀자 <한계령>
진달래는 망원경의 렌즈 속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났고
새순들이 돋아난 산자락은 푸른 융단처럼 부드러웠다.
2. [ 칡꽃 ] 김동리 <역마>
먹을수록 목이 마른 딸기를 계연은 그 새파란 산복숭아서껀 둥그런 칡잎으로
하나 가득 따서 성기에게 주었다.
부연> 황순원 <소나기>
3. [ 배꽃(이화) ] 조정래 <정글만리>
4. [ 백합(나리) ] 윤성희 <부메랑>
꽃집 여자가 그녀에게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백합이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향이 심장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5. [ 원추리 ] 한강 <채식주의자>
주황색 원추리는 오목한 배에 피어났고, 허벅지로는 크고 작은 황금빛 꽃잎들이
분분히 떨어져 내렸다.
6. [ 탱자 ] 윤대녕 <탱자>
내 부질없는 마음엔 탱자를 갖고 물을 건너면 혹시 귤이 되지 않을까 싶어 들고 왔다.
7. [ 망초 ] 공선옥 <영희는 언제 우는가>
내게는 특별히, 남자의 옷이 덮여 있었다. 나는 내게 옷을 덮어준 남자가 무릎을 세워 얼굴을 묻은 채 자고 있는 것을
남자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지켜보았다.
"알아요? 이제 방금 망초꽃이 피었어요."
나는 깜짝 놀랐다.
cf. 7대 잡초
바랭이, 왕바랭이, 망초, 개망초, 명아주, 쇠비름, 환삼덩굴
8. [ 느티나무 ] 강신재 <젊은 느티나무>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 펑펑 울면서 온 하늘로 퍼져가는
웃음을 웃고 있었다.
소설은 픽션이지만 우리의 실제를 포함해야 진짜 소설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소설을 읽으며, 사람을 알고
삶을 이해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소설을 읽지 않는다.
'꽃'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저자는 인용된 꽃이 주는 의미나 장치를 통해 소설을 디테일한 부분까지 읽는다.
무척 부러운 일이다.
꽃을 좋아하지만 잘 모른다. 그래서인가.
적어도 이 책에 나오는 나무나 꽃, 소설을 기억하고자 모든 목차를 적어보았다.
저자가 인용한 문장도 필사해보았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은 꼭 읽어보려고 한다.
아마 이 책은 내가 꽃을 익히고, 소설을 읽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부록
5대 길거리 꽃
팬지, 피튜니아(사피니아), 마리골드, 베고니아, 제라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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