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장편소설 (2009). 너는 모른다, 문학동네.
가족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아내와 헤어지고 스무 살이 넘은 남매를 가진 상호는 중국인 화교 주옥영과 다시 결혼한다. 그리고 늦둥이 유지를 낳는다. 전처소생의 딸 은성과 아들 혜성은 제멋대로인 엄마와 거친 아빠를 가진 탓인가 일찌감치 깊은 상처를 입고 성장한다. 은성은 혼자 학교 앞에서 방탕하고 제맘대로 산다. 혜성은 새엄마, 아빠 그리고 이복동생 유지와 같이 산다. 의대에 합격할 정도로 높은 지능을 가졌고, 아무 문제없는 듯 보이지만 내면의 상처 탓인지 늦은 밤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남몰래 홀로 뛰쳐나가 불을 지르는 습관을 갖고 있다.
어느 일요일, 새엄마는 대만으로 오래된 연인을 만나러 떠나고 유지가 사라진다. 유지의 실종으로 드러나는 상호, 옥영, 은성, 혜성 그리고 유지의 가족이야기. 이렇게 서로를 모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남보다 못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487쪽에 계속 이어진다.
딸을 구하려는 마음으로 무리한 장기밀매를 하던 상호는 중국공안에게 체포되고, 옥영이 오래도록 사랑했던 유지의 친아버지 밍은 마찬가지로 유지를 구하려다 장기밀매 조직에게 살해당한다.
망가진 채 식물인간이 되어 돌아온 어린 동생과 딸은 은성, 혜성 그리고 엄마인 옥영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동기가 된다. 은성에게는 자신을 갉아먹게 만든 아빠의 새 여자 그리고 동생을 돌보는 데 정성과 마음을 다하는 은성, 방화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의 길에서 방황만 하던 혜성은 제자리를 찾고, 옥영은 남편을 구하려고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새활을 계속하고 있다. 과거의 그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저 미워할 대상으로 불편해하고 무시하고 증오했다. 아픔과 절망 그리고 고통은 인간 사이의 거리를 멀게 하기도 하고 가깝게 하기도 한다.
이제 그들은 진짜 가족이 되었을까? 진짜 가족은 무엇인가? 가족 구성원이란 무엇이며,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이들의 서로를 얼마나 알아야 하고, 알고 있을까? 가족간의 거리는 얼마가 적절한 것인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책 읽기를 마무리 했다.
" 무엇보다 그녀를 못 견디게 하는 건 사람이었다. 제 쪽에서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 대한 채 한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몸안의 모든 기를 다 빼앗겨버린 것만 같았다. 몸 안의 모든 기를 다 빼앗겨버린 것만 같았다. 십 분 뒤 다시 강의실에 들어갈 생각을 하면 두 어깨에 단단한 쇳덩어리가 얹힌 느낌이었다. ~~"(228쪽)
그전까지 남자는 그녀의 시야 밖에 있었다. 아주 오래 한 사람만을 곁에 두어온 자의 관성으로, 옥영은 제 삶이 영원히 길고 희미하게 뻗은 일직선 위에 놓여 있으리라 믿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일치하는 한 권의 책처럼. (230쪽)
생각의 모습을 그리는 문장이 신선하다.
-..............................................?
남긴 이의 이름은 역시 HALKA였다. 아니는 무름 표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의문부호는 돌연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몸을 둥그렇게 구부리고 있었다. 그 조그만 기호가 터무니없이 돌연하고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자신을 향해 자꾸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사라진 딸을 닮은 아이를 보며 숨어사는 아빠가 갖는 마음은 이런 것일까?
(전략) 바이올린을 품에 그러안은 채 활짝 웃고 있는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열대여섯쯤 되었을까. 자랑스럼도 부끄러움도 없는 맑고 환한 얼굴이었다. 저런 표정은, 가장 좋아하는 동시에 가장 잘하는 일을 마음껏 하며 살아갈 때에만 나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언젠가 유지가 짓는 저토록 맑고 환한 미소를 볼 수 있다면 인생의 전부를 걸 수 있었다. 그는 그것을 아프게 확신했다.(311쪽)
슈트라우스 형제의 <피치카토 폴카>는 아이가 몹시 좋아하는 곳이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맑은 봄날 푸른 하늘을 가르며 팽팽하게 빨랫줄이 뻗어 있고 작은 두 마리가 거기 나란히 앉아 재잘거리는 풍경이 그려졌다. 그러면 아이는 혼자서 싱긋 가만히 미소를 머금곤 했다. (253쪽)
불행이야말로 날것의 감정이다. 불행하다는 느낌을 완벽히 감출 수 있는 눈동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263쪽)
'가끔은 이렇게 > I Love BOOK^^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 요나(2018). 재료의 산책 (0) | 2021.04.10 |
---|---|
17. 현기영(1999). 지상에 숟가락 하나 (0) | 2021.03.21 |
14. 오정희(1996). 새 (0) | 2021.02.28 |
13. 포토에세이 '미스터 선샤인' (0) | 2021.02.24 |
12. 김연수(2020). 일곱해의 마지막 (0) | 2021.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