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4일
비는 내렸지만 그치려나 했다. 설마 계속 이 비가 내릴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락가락하겠지 했다. 어제도 그랬으니까.
'올레 2코스'는 성산 '광치기 해변'에서 '온평리 포구'까지 걷는다. 15.2킬로. 장대같은 빗 속에 결국 걷고야 말았다.
2코스는 1코스와 달리 대부분 숲길이고 들길이었다. 장화를 신고 걸어야 하는 사람 흔적 없는 산과 들, 수를 헤아릴 수 없도 없을 만큼 물웅덩이를 건넜다. 그러는 동안 신발에 물을 잔뜩 담겨 그렇지 않아도 아픈 발가락이 퉁퉁 붓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이 왕왕 들었다. 그냥 멈춰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2코스는 적당히 끊어줄 길이 없었다. 비로소 차가 다닐 정도의 거리가 나타났을 때는 이미 혼인지가 코 앞이었다.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긴 길이 아니었지만 비 때문에 시간이 걸렸다.
조카도 설마 설마 했다. '대수산봉'을 올라가는 가파른 길에서는 등산도 싫은데 이 빗속에 왜 올라가야 하냐고 투덜거리도 했다. 멈추려면 중간 스탬프를 찍는 고성리에서 멈추어야 했다. 빗물이 섞여 흘러내리는 스탬프가 찍힌 패스포트도 맘에 안들었다. 우리 왜 이러고 있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걷기 시작한 길을 멈추자고 하진 않았다.
무심한 나는 그런 조카의 마음도 제대로 달래지 않고 말도 안되는 말을 했다.
"살다 보면 비가 오고, 눈도 오는 날이 있다. 따듯한 날도 있지만 바람 부는 날도 있다고. 기왕 시작했으니 그저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언제까지고 비가 계속 오진 않을 테니까."
즐기기로 했다. 귤을 까서 입에 넣으니 어이없이 달콤하다. 화장실이 급해 혼인지까지 가지 못한 채 근처 리조트에 들리기도 했다. 혼인지의 수국은 이미 많이 시들었다. 시든 꽃잎 속에서도 여전히 이쁘게 남아있는 한두 송이의 수국이 비를 맞아 더욱 아름다웠다.
온평리에 도착했다. 이미 배는 고플 대로 고프고, 발은 발대로 지쳤다. 멀리 파란 간세가 보이는 해변이 보이니 마음이 급해졌다. 비가 심해 스탬프를 찍지도 못했다. 다행히 맛있어 보이는 식당이 보였다. 머리를 감은 듯 젖어 버린 머리카락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친절한 사장님의 말 한마디에 심한 빗 속에 걸으며 갈등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어느새 비는 그쳐있다. 따뜻한 햇살까지 나와있다. 여름날은 이런 것이다. 비는 그치고, 한없이 부른 배를 한 채 다시 광치기 해변으로 갈 201번 버스를 기다리며 서로 어이없이 웃어버렸다. 이런 날도 오래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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