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TRIP

제주 올레 3-B코스

Jeeum 2021. 7. 8. 21:46

2021년 7월 8일

 

장마다. 오전 내 비가 내렸다. 점심을 먹고 걷기로 했다. 온평포구로 갔다. 오랜만에 밝은 햇살을 만났다. 끈적거리는데 햇살이 더하니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일 것이다. 즐겨야 한다. 

 

 

지난번 못찍은 '온평리' 2코스 종점 스탬프를 찍었다. 아직 물기가 많아서일까. 스탬프가 완전 퍼져버렸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반갑다. 제주에서 처음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도댓불'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곧이어 A와 B코스로 나뉜다. 좀 더 쉬워 보이는 코스를 걷기로 했다. 온평리부터 '환해장성'을 따라간다. 온평리를 이어 '신산리'에도 긴 환해장성이 이어진다. 항구를 만들기도 어려운 지형의 바닷가 마을에 자연으로부터 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돌을 하나씩 쌓아 만든 긴 성. 돌성 안과 밖을 걸으며 생각한다. 그 옛날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돌을 이고 지고 나르는 사람들을.

 

신산리에서 이쁜 바다를 만났다. 바윗돌이 만(灣)을 이루고 있다. '만물'이라고 한다. 용천수가 솟아나와 물이 차갑단다. 자연이 만들어준 담수욕장을 후세에게 물려주자란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물놀이를 하는 커플도 보이고, 열심히 바위틈을 움직이는 아줌마들도 보인다. 바다색도 모양도 너무 이뻐 우리도 잠시 놀기로 했다. 파도 멍을 때리면서.

 

 

 

화장실이 급하다는 조카의 말과 동시에 나타난 대형 카페 '아오오' 스콘과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신산리 바다를 보며 바람을 즐긴다. 아무리 B코스 라지만 지나치게 노는 듯하다. 14.6킬로도 짧은 길이 아닌데. 1시 반부터 걷기 시작해놓고 농땡이를 치고 있다. 그래도 좋다. 나는 지금 농땡이를 치러 왔으니까.

 

카페 뒷쪽으로 신산리
카페 앞바다

이어 신산리 마을카페. 중간 스탬프를 찍고 다시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배를 채운다. 돌고래가 놀러온다는 신산리. 바다를 뚫어질 듯 바라본다. 돌고래를 보려고~~^^ 마을카페 안에서는 세미나를 하고 있다. 지역사회 문화 만들기와 관련된. 발표자의 음성이 나직해서 졸릴 것 같다. 좁은 카페를 가득 메운 사람들. 부디 제주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고 만들어주길.

 

다시 바다를 보며 걷는다. '농개'를 지난다. 전보대에 '방수 단열' 우레탄 우레아라는 광고판이 보인다. 갑자기 조카가 웃는다. '빙수, 단팥'으로 보였단다. 하하하. 바람과 구름과 하늘도 같이 웃는다.

 

 

A코스를 걸어온 사람들과 만나는 지점이다. 오름을 거쳐 내려와 다시 도로를 건너 바다로 돌아온 사람들. 오늘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 길을 걷지 않은 우리들은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8.6킬로 지점을 지난다. 갑자기 푸른 초원을 펼쳐진다. '바다목장'이다. 바다와 초원이 만든 풍광이 장관이다.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이 꽤 많다.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초원과 하늘이 만나는 것에 지평선이 보인다. 이곳은 사유지. 기꺼이 길을 내준 이들에게 감사한다.

 

10.6킬로를 지난다. 여기는 신풍리. 멋진 해수풀장이 보인다. 개장전인지 아님 개장을 못하는 건지 알 수 없이 텅 비어있다. 야자수 아래 놓인 베드. 라탄 테이블. 이 여름 안에서 가벼운 여름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얼른 오기를 소망한다. 신풍리 바다에 바다와 같은 배경 속에 테이블이 순하게 놓여있다. 꽃병도 함께. 하늘을 배경으로 그 테이블에 앉았다. 조카의 모습도 사진에 담았다. 바다를 바라보는 아이는 무엇을 생각할까..  그저 힘들어서 멍하고 있을지도.

 

 

제주 동쪽 마을에는 어디나 개들이 많다. 동물 사랑꾼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나를 스쳐간 개들은 조카에게로만 몰린다. 이 네 마리중 내게 관심을 두는 개는 없었다. 또삐야.... 

 

 

'배고픈 다리'다. 움푹 내려앉아 배고픈 다리란다. 자연도 배가 고픈가 보다. 아니면 그저 내려 앉은 다리를 보던 누군가의 마음이 허전해 그렇게 이름 지었을지도. 내려 앉은 다리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 것이고, 배고픈 다리를 지날 때마다 배고픈 이들을 한번쯤 생각할 지도 모르니 그것으로 충분히 이름값을 했을 것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아까보다 살짝 굵다. 계속 걸어야 할지 잠시 망설인다. 우산도 비옷도 없어. 하지만 그저 걷는다. 걷다 보면 그칠 수도 있으니까. 심하게 내리면 어쩔까 싶었는데 다행히 걷기를 끝낼 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하천리를 지난다. 곧이어 표선리이다. 멀리 표선 해수욕장이 보인다. 빙 둘러가지 않고 부드러운 모래길을 걷는다. 해수욕장을 걸어 북적이는 표선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지막 스탬프를 찍었다. 역시 종점에 당케국수가 보인다. 이미 문을 닫았지만.

 

 

하늘보리로 땀을 식힌다. 노동의 결과는 언제나 뿌듯하다. 택시를 타고 흑돼지덮밥을 먹으러 온평리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미 식당은 문을 닫았다. 둘 다 배가 너무 고픈데. 근처 '출출 분식'에서 떡볶이에 한치 튀김으로 저녁을 먹었다. 이 역시 별미이다. 든든한 배를 하고 나서는데 '해저문 바다'가 불쑥 다가온다. 뭔가 마음에서 떨어진 느낌이다. 아주 잠시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순한 마음으로 밤바다의 발자국을 따라 드라이빙했다.    

   

 

덧붙임 :

사람사는 동네에 악취가 나는 것도 당연하다. 그동안 걸으면서 제주의 올레에서 악취를 경험한 건 3코스가 처음이다. 단순한 동물의 분뇨가 아닌 생활오수같은 지독한 냄새. 그래서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려 했다. 어딘지를 굳이 밝히지 않았다. 그저 지나왔을 뿐. 그저 지나왔다는 것은 방관이며 타자의 태도여서 미안하다. 오래토록 남을 듯하다.

 

 

'가끔은 이렇게 > I Love TRIP'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올레 8코스  (0) 2021.07.25
제주 올레 1-1코스  (0) 2021.07.21
제주 올레 1코스  (0) 2021.07.07
종달리 산책  (0) 2021.07.06
7월 5일, 올레 8코스  (0) 2021.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