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하우스에서의 3박을 마치고, 이제 마지막 숙소인 제주시로 가야 한다. 오빠 부부가 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수선하게 부려놓은 짐을 챙겨 공항으로 나갔다. 조카와 둘 다 부스스한 얼굴로 마중했다.
'우도'로 갔다. 12시 반 성산 여객터미널을 떠났다. 20여분 만에 '천진항'에 도착했다.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 한여름, 날씨가 좋으면 매미가 울고, 하늘은 맑다. 하늘이 맑으면 그만큼 햇살도 강하다.
제주 올레에서는 7월과 8월 관광객이 많은 시기 동안 '우도올레'를 폐쇄한다는 공지를 했다. 전기차나 스쿠터 등 전동차들이 많아 걷는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공지였다. 계속 망설이다 우도를 보고 싶어 하는 언니를 핑계 삼아 일단 가보기로 했다. 우도올레는 총길이 11.3킬로. 성산과 종달에서 오는 배가 닿는 '천진항'이나 '하우목동항'에서 시작하고 끝이 난다. 중간 스탬프는 하고수동 해수욕장 '범선 식당' 앞에 있다.
우리는 천진항으로 갔다. 덥다. 사람들도 많다. 제주올레의 걱정이 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현장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출발 스탬프를 찍는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 오늘 하루 이 길을 모두 걷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 시작은 해보는 것이다. '섬속의 섬'이라 오고 싶다고 언제나 쉽게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가족을 동반한 방문이니 무리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적어도 중간 스탬프는 찍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더운 날, 주먹 불끈 쥐고 출발한다.
우도 등대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가장 먼저 늦에 띄는 것은 역시 '땅콩'이다. 검은흙으로 기름져 보이는 땅에 귀엽게 생긴 땅콩 나무가 줄지어 가득하다. 푸른 이파리를 잔뜩 달고 있는 작은 식물이 가득하다. 그들을 품고 있는 검은 대지 안에는 작고 고소한 땅콩 열매가 가득 달려 있을 것이다. 오빠와 언니는 스쿠터를 빌렸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두 사람이 따라온다. 색다른 재미이다. 걷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들은 햇빛 쨍쨍한 여름 날, 그늘도 없는 뜨거운 길을 걷는 우리가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 바다에서 달큼한 바람이 불어왔다.
우도 등대 쪽으로 방향을 바꾸라는 간세가 나왔다. 오른쪽으로 돌아 언덕을 향해 걷는다.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다. 가끔 이런 제주의 광경을 보노라면 여기가 우리나라 땅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늘과 맞다은 곳에 드넓은 초원이 지어놓은 지평선이 보이고, 그 풍경 속에 영화에나 나올법한 근육질의 말들을 타고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멋지다. 캬~~ 달리 할 말이 없다. 높은 곳에 오르니 멀리 제주 본 섬이 보인다. 가장 봉긋하게 보이는 오름이 21코스 지미봉일 것이다.
우도 등대에 도착했다. 참으로 덥다. '우도에 오길 참, 잘했다.'라는 글자가 다소 웃프게 다가온다. 등대 건물 뒤에 숨어 텀블러의 시원한 물 한잔으로 더위를 식혀본다. 괴로운 표정이다. 조카도 나도.
그래도 참 좋다. 눈으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이 풍경. 멀리 '검멀레 해변'이 보인다. 우도봉을 빙 돌아 다시 나무 계단을 한참 걸어 내려왔다. 아스팔트 변에 우도봉을 알리는 간세가 서있다. "안녕! 덥지? 간세야. 이모 죽겠다." 검멀레 해변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원래라면 해변에 닿기 전 살짝 마을길로 들어서야 하는데. 스쿠터를 타고 도는 오빠가 해변길로 같이 가자 해서 빙 둘러 가기로 했다. 거리가 다소 멀지도 모르지만 가족과 함께 가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 언제나 식욕이 왕성한 오빠는 배가 고프다고 한다. 식당을 찾았으나 마땅한 데가 없어 '하고수동 해수욕장'까지 가기로 했다.
우도 땅콩을 알리는 입간판, 우도의 돌담 사이로 보이는 청청한 하늘, 이쁜 꽃들, 건강한 흙, 바람 그리고 할머니. 제주 시골 마을에서는 언제나 나의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할머니들이 의자에 앉아 있거나 일을 하거나 팽나무 밑에 앉아 있다. 인사를 하면 가끔 받아주신다. 그래도 좋다. "건강하세요. "
드디어 하고수동이다. 식당 '범선' 앞에 중간 스탬프를 품은 건강한 간세가 있다.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 드디어 완성했다. 우도 올레의 스탬프. 오늘은 여기까지. 이전에 하우목동항에서 우도 한 바퀴를 돌아본 적이 있어 오늘은 이것으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범선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여기 맛집이다. 해수욕장에서 다소 떨어져서 인지 생각보다 손님이 적다. 하지만 맛있다. 모든 것이. 멋진 배도 가득하다. 볼거리 먹거리가 가득하다. 여기는 풍성한 삶이 넘치는 우도이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여름 안에서 뜨겁게 놀았더니 졸립다. 마을을 가로질러 걷기로 했다. 생각보다 길이 길지 않았다. 우도 면사무소를 거쳐 마을과 바다와 밭과 사람들을 스쳐 걸었다. 발걸음이 무거운지 조카가 뒤처저 걷는다. 갑자기 울면서 온다. 넘어졌다고 했다. 바지에 구멍이 났을 정도로 넘어진 모양이다. 괜히 미안했다. 막무가내 고모의 걷기 여행에 동행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다쳤다니. "미안해. 집에 가서 약 발라줄게." "아빠 한데 고모 혼나겠다."
5시 반 천진항을 출발하는 배를 탔다. 섬으로 가는 사람도 다시 섬으로 가는 사람도 가득하다. 배 안에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에 우도가 어떻게 남아있을지 궁금하다. 좋은 가을날, 머물기 위해 다시 오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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