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8코스 월평 ~ 대평 올레, 19.6Km
장마가 갠 7월, 올레 걷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길이가 긴 코스는. 일부로 고통을 느끼려는 것이 아니라면 적절하게 나누어 걷는 것이 현명했다. 8코스의 길이는 19.6킬로. 월평 아왜목낭 쉼터에서 주상절리까지, 주상절리에서 중문 예래동 입구까지, 그리고 예래에서 대평포구까지 세 번으로 나누어 걸었다. 각각 다른 날, 다른 시간을 걸었지만 그래도 완주의 기쁨은 좋았다. 하나씩 기억을 더듬으며 사진을 토대로 정리해 보았다.
7월 5일 월요일, 월평 아왜낭목 쉼터에서 주상절리까지
오후 2시 18분. 월평 아왜낭목 쉼터(7코스 완주후 버스가 나타나는 바람에 스탬프를 찍고 급히 떠났던 곳)에서 8코스 시작 스탬프를 찍었다. 제주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흐린 날씨와 장맛비 속에 1코스와 2코스를 걸었던 우리는 장마가 개자 예상보다 더욱 뜨거운 햇살에 부딪쳤다. 쨍쨍한 날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걸어야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오전에 느긋하게 일도 하고 책도 보았다. 점심을 먹고 월평에 도착한 것이다.
월평은 제주 남쪽바다를 마당 삼아 자리한 마을이었다. 차를 세우고 돌아보니 요렇게 순한 개 한 마리가 동네를 똑 닮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인사를 하고 걷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가득 피어있는 '소철'을 보았다. 소철 농장인가 보다.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지만 가득 모아놓은 모습을 보니 새삼 내가 제주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제주에는 소철뿐 아니라 능소화, 가자니아, 황근, 나리꽃 등 모양 조차 낯선 갖가지 식물들이 피어 있고, 어딜 가나 동물들을 만난다. 그만큼 자연이 풍부한 곳이다. 이곳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왼쪽으로는 서귀포 바다, 오른쪽에는 풍요로운 감귤 비닐하우스를 따라 걷는다. 서귀포의 전망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리조트가 들어서 있다. 휴가를 맞아 제주의 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파란 빛깔의 리본을 따라 땀방울을 느끼며 한걸음씩 걷는다. 오후의 햇살은 여전히 뜨겁다. 금방 '약천사'에 닿았다. 절이 엄청나게 크다. 올레 7-1의 '봉림사'도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봉림사보다 더 웅장한 절이다. 절을 지키는 집사인가. 냥이 한 마리가 대웅전 옆에서 먼저 보인다.
대나무와 야자수가 줄지어 늘어선 길을 따라 걷다보면 '대포포구(큰개)'의 반가운 환영 인사를 받는다. 아직은 산책 삼아 걷기 적당하다. 조카에게 산책 가자고 꼬셔서 나온 터라 오래 걷기는 어렵다. 산책은 산책이니까.
더욱 바다 가까운 길을 걷는다. 바다의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풍부한 물기와 바람을 먹고 자란 꽃들을 보며 걷는다. '대포 연대'를 지나 5킬로를 알리는 표지판을 만났다. 사람이 만든 인공의 터널을 지났다. 이제 곧 '주상절리'이다. 탁 트인 바다가 보인다. 주상절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 가득하다. 중간 스탬프를 찍었다. 3시 50분 오후의 산책이 끝났다. 편안한 마음으로 용암과 바다가 만들어낸 주상절리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았다.
7월 13일 화요일 주상절리에서 예래동 입구까지
너무 더워서 늦게 걷기로 합의했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둘다 미적거리고 뒹굴거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뜬 채로 하얀 천장을 바라본다. 이런 시각, 이럴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친다. 마음이 아직 일상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늦은 브런치를 '애월 연어'에서 먹기로 했다. 올레 7-1코스 시작점 부근에서 연어를 좋아하는 조카의 나의 눈에 들어온 깔끔한 식당. 조용하고 음식도 좋았다. 오랜만에 연어초밥에 매콤한 가락국수를 곁들여 먹었다. 기대보다 좋았다.
바로 옆 과일가게 '달쥬'에서 진한 파인애플 주스를 마셨다. 시외버스터미널 근처는 서귀포 혁신도시. 잠시 이마트에 들러 장이 봤다. 다양한 물건들이 가득한 대형 슈퍼. 괜히 들뜨고 흥분됐다. 습관이란 놀라운 것이다.
오후 4시, 주상절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굵직한 나무와 거대한 용설란 사이로 회색 구름 가득한 흐린 하늘이 보인다. 비가 내리면 어쩌나 싶었지만 일단 걷기로 했다. '황근'이 가득 피어 있었다. 4코스 안내인의 말에 의하면, 절멸 위기의 천연기념물 황근(노랑 무궁화)을 제주에서 힘들게 복원했다고 말했다. 4코스도 여기도 군락을 이루고 있는 황근을 보니 애쓴 분들에게 감사하고 기쁘다. 협죽도의 붉은 꽃도 반갑다.
'베릿내오름' 입구에 도착했다. 공사 중이라 돌아가라는 안내판이 나무 계단 앞에 붙어 있다. 더위에 오르막을 오르지 말라는 안내판에 마른땅에 오아시스처럼 반갑다. 둘이서 "앗싸"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곧이어 중문천에 도착했다. 달리는 도로 아래 자연 그늘이 만들었다. 산에서 내려온 물이 모여 천연의 풀을 만들었다. 단 세 명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지키는 사람도 세 사람. 완전 개인 풀이다. 우리도 물놀이 복장을 챙겨 왔었으면. 세상에 이런 좋은 곳이 있을까.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다리를 건너다 바람과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들었다. 세상 둘도 없는 위로가 되는 소리이다.
예전엔 중문 해수욕장이라 불리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젠 '색달 해수욕장'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적당하게 만들어진 해변의 시설물들. 알록달록한 빛으로 가꾸어져 있다. 그네도 있고, 무인카페도 있고, 선 베드도 있고, 포토 존도 있다. 그저 즐기기에 충분한 장소이다. 눈에 좋은 풍광이 마음에도 좋다. 잠시 커피 한잔 마시며 쉰다.
드디어 중문 단지 안으로 들어왔다. 넓은 도로에 쌩쌩 달리는 차들이 내뿜는 여름날의 열기에 금새 지친다. 조금만 더 걸어보자 하고 애를 써보지만 힘이 든다. 터벅거리며 걷는 조카의 뒷모습이 무겁다. 중문 관광단지 안내소를 거쳐 예래동 입구에서 택시를 탔다. 수고했다. 시윤. 오후 다섯 시 반이다. 내일은 김해로 출근해야 해. 충분히 걸었다. 이제 집으로 가고 싶다.
7월 15일 목요일 예래동 입구에서 월평포구까지
오전 10시 반. 더본 호텔 주차장에 주차했다. 걷기 시작했다. 큰 길을 건너 바다 쪽으로 걸어내려 간다. 하늘 바탕에 하얀 구름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아름다운 생태마을 '예레'에서 시작한다. 13킬로 지점을 지나면서 '예래생태공원'을 들어선다. '대왕수천을 따라 길고 긴 생태 공원이 계속된다. 졸졸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계속 함께 한다. 나뭇잎 사이로 여름날의 햇살이 부서져 기분 좋은 트레킹을 만들어준다. 공원의 길이가 생각보다 꽤 길다. 이 길고 긴 공원의 나무와 하천에서 내뿜는 맑은 공기가 바로 서귀포의 청명함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바다이다. 좌측으로 짓다만 엄청난 크기의 타운하우스가 쓸쓸하고 안타깝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닷가에 저렇게 큰 타운 하우스가 방치된 채 서있다. 세월에 부식된 녹슨 창문이 거미 줄에 걸린 곤충처럼 그저 불쌍하다. 올레 깃발 뒤로 보이는 바다는 저토록 푸르고 아름다운데. 그걸 바라보는 건물의 심장이 얼마나 아릴지 괜히 슬퍼진다.
잠시 바다의 푸름에 빠져 햇살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눈에 담고 싶은 광격이다. 영상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낸다. 잠시라도 휴식이 되었기를 바라며.
'논짓물'이다. 지난 6월, 올레 9코스를 마무리하고도 남는 시간에 아쉬움을 달래러 거꾸로 걸어 여기까지 왔었는데. 이젠 담수욕장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시원한 바다를 보며 담수욕을 즐기는 가족들이 보인다. 나도 당장 뛰어들어 들고 싶다. 기회가 되면 다음엔 꼭 물놀이를 즐기고 싶다.
'마녀의 언덕' 카페에서 시트러스를 마셨다. 인공 바람으로 시원한 공간에서 푸르디푸른 바다를 내다보는 것도 힐링이 된다. 다시 길을 걷는다. 카페 '레드 브라운'을 지나 드디어 대평포구이다. 멀리 '박수기정'이 보인다. 박수기정이 사유지라고 했더니 엄청나게 놀라는 조카. 이렇게 올레 8코스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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