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2코스 무릉 외갓집 ~ 용수포구 17.5Km
7월 18일, 오후 5시.
문이 닫힌 <무릉외갓집>
서늘한 일요일 저녁,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내릴 듯한 날씨에 올레 12코스 시작점에 섰다.
저 멀리 회색빛 구름을 무시하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파란 하늘과 구름을 믿고 걷기로 했다.
걷기 시작하자마자 4.3 위령비가 보인다.
어딜 가도 남아있는 아픔의 자국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가 여기저기 드러나있다.
오늘의 우리, 이곳을 그저 걸을 수 있는 감사 하다.
잠시 고개 숙여 인사한다.
조카는 이제 완전히 4.3을 이해하고 있다.
다행이다.
무릉리에는 학당이 있다. 제주어를 가르쳐주나 보다.
이제 곧 제주어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는 제주사람을 만난 적 있다.
자신도 아이도 사용하지 않는 언어.
제주어가 사멸되지 않기를 바라며,
<무릉도원학당>에게 파이팅을 보낸다.
마을 길을 벗어나 드넓은 무릉리의 밭길을 걷는다.
멀리 쟃빛 구름을 머금은 <녹낭오름>이 보인다.
비어있는 밭들이 많다.
뜨거운 여름, 밭들도 잠시 휴식을 취하나 보다.
들판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들판 곳곳에 세워진 이것은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다.
<도원 연못>이다.
밭길 사이사이 오래된 무덤이 많아서인지 조카가 긴장한다.
연못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자란 무성한 풀들에도.
여름날의 도원연못은 자유로운 새들의 천국이다.
잠시 서서 흰새들의 비행을 감상한다.
다시 밭길을 따라 걷는다.
드넓은 밭들이 계속된다.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조카와 함께 그 무지개에 반갑게 반갑게 인사한다.
올레를 걷는 동안 힘든 것도 많지만
이런 즐거움을 무엇이 비유할 수 있을지
아무튼 즐겁다.
간세가 녹낭오름(목남봉)을 향하고 있다.
야비한 걷기 여행자는 오름을 향하지 않고
넓은 길을 선택했다.
비와 시간을 핑계로.
곧 1132번 도로에 닿았고,
202번 버스가 지나가고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신도마을 <산경도예>가 있을 것이고
거기에 중간 스탬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신도리 마을에도 눈에 끄는 장소가 있다.
나지막한 기와집 창문에 제비 문양이 보이고,
한자로 <생활도구점>이라고 적어 두었다.
무명 저고리를 닮은 인상의 가게이다.
그냥 갈 수 없다.
조카는 천연수세미를 사고
나는 천연 향을 샀다.
당장 오늘 저녁 나의 집을 향으로 채울 것이다.
출입문을 맞대고
편집 샆 <루 페이퍼 RUPAPER>가 있다.
직접 만든 음료도 맛있고
운치 있고 품격 있는 물건들과 디스플레이도 아주 깔끔했다.
이제 <산경도예>이다.
척 봐도 예전엔 학교였음을 알 수 있다.
아무도 없다.
그저 이제 예술의 마을로 바뀐
학교 건물이 아무 생각 없는 듯 바람과 나무를 바라보고 앉아있다.
중간 스탬프를 찍고
나도 그저 무심히 앉아있었다.
눈에는 오름과 마을과 풀과 하늘이 보이고
물기에 젖은 몸으로는 바람과 태양과 여름이 느껴진다.
오늘 하루도 풍성한 시간을 주심을 감사했다.
7월 21일(수)
어제 서울을 다녀왔다.
피곤해서 늦잠을 잤다.
천천히 움직이기로 하고 빈둥거렸다.
계절학기 강의도 이제 막바지이다.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용수포구를 향해 달린다.
오른쪽으로 동쪽 바다를 끼고 달린다.
<판포포구>에 가까운 곳에서 이렇게 멋진 경치를 만났다.
힘차게 바닷바람을 받으며 돌아가는 거대한 바람개비의 행렬
힘이 강한 것에도 아름다움이 있는 법.
잠시 경치에 길을 멈춘다.
5시 36분 <용수포구>에 도착했다.
13코스 시작점이다. 몇 달 만에 다시 만났다.
<노을해안로>를 달려 <수월봉>에 도착했다.
그리 높지 않은 오름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전동 자전거에 킥보드 대여점까지 있다. 그저 걸어가도 충분한 거리를.
낙조로 유명세를 타는 때문이리라.
입구에 나부끼는 올레 깃발이 반갑다.
수월봉 정상에서 보이는 바다가 절경이다.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차귀도는 그저 한 폭의 그림이다.
수월봉 꼭대기에는 고산기상대가 있다.
기상대 아래로 멀리 노을해안로를 따라 마을과
풍요로운 땅이 보인다.
정문 옆으로 올레 화살표를 따라 걷는다.
이길로 계속 가면 신도 포구가 나오고
다시 마을길로 들어서면
산경도예가 나올 것이다.
우리는 걷기를 포기하고
수월봉 낙조를 즐기기로 결정했다.
일몰 시간이 될 때까지 바닷가로 나가서
드라이브를 하고 산책하기로 했다.
일몰 시간에 맞추어 다시 수월봉으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는 해를 보러.
표현하기 어려운 태양의 침수를 지켜본다.
나의 눈에서 멀어진 태양은
다시 누군가의 눈을 뜨게 하는 아침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이제 삶에서 일몰 시각이 가까운 나는
해의 부지런한 모습이 존경스럽다.
이렇게 화려하지 않아도 좋으니
지금처럼 스러질 수 있기를 소망해보았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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