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6일 토요일
제주올레 11코스 모슬포(하모체육공원) ~ 무릉(무릉외갓집) 17.3km
당일치기 걷기 여행
6:20 (대구) ~ 20:45 (제주)
두 달 반 만에 제주 올레 걷기 여행
이제 마지막 두 코스만 남았다.
공항에는 생각보다 엄청난 사람들이 있었다.
함께 아직 컴컴한 하늘을 날아 무사히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제주답게 바람도 불었다.
4번 버스 정류장에서 대정행 151번 버스를 탔다.
빗속에 익숙한 거리가 끊임없이 다가왔다.
그 거리에서 지냈던 날들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버스는 거의 1시간 10분을 달렸다.
하모체육공원에서 내렸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선택할 여지도 없이 하차한 곳에서 오른쪽에 있던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비 오고 바람부는 날
한국사람들에겐 뜨끈뜨끈한 국물이 최고다.
든든히 먹고 나선다.
비가 살짝 잦아들어 있었다.
덕분에 비옷을 입지 않고 우선 먼저 걷기로 했다.
길을 건너 출발점으로 갔다.
대형버스가 들어오고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모두 스탬프를 찍었다.
궂은날, 올레 11코스를 걷는 사람이 많다.
뭐지? 사람이 많은 곳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미리 스탬프를 찍어두어 다행이다.
건너온 길을 바로 건너
걷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묶인 올레 리본이 바람에 춤을 춘다.
간세가 알려주는 방향을 따라 걷자마자 곧 잿빛 모슬포 바다가 나타났다.
바닷길로 접어들자
완전무장한 올레꾼들이 무리지어 따라와 스쳐간다.
그들의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놀멍 쉬멍 인사도 나누며 걷자고 말을 걸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곧 사라졌다.
대정 오일장이다. 그저 지나칠 수 없다.
궁금하니까.
천천히 걷더라도 볼 것은 봐야지.
걷는 게 목적이 아니라 걸으며 제주를 즐기는 게 목적이니까.
시장에는 없는 게 없다.
추워서 일까. 호떡집의 오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같이 하나씩 먹었다.
꼬마김밥도 사고, 호떡도 샀다.
갑자기 든든해졌다.
<이때부터 두통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날 종일 포기하고 싶을만큼 두통이 계속되었지만
멈추지 않고 17.3킬로를 완주했다.
그러고 있는 자신이 이상했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산이물 공원의 이정표를 보고
<삼다도 소식>의 노래비도 보고
바다도 본다.
돌도 많고 바람도 많은 제주에는
사람도 많이 찾는다. 그들의 걸음이 너무 빨라 함께하기 어렵다. 아쉽다.
다시 한무리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바닷길을 따라 걷다
마을길로 들어선다.
모슬포는 <못살곳>에서 왔다고 했다.
그만큼 사람살기 어려울 만큼 척박한 곳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도 식물도 바람이 심한 날은 바람을 이기기보다 바람과 함께 눕는다.
멀리 대정여고 옆으로
너른 밭에는
아직 어린 양파가 심겨져 있고,
싱싱한 양배추가 가득하다.
벌써 3킬로 왔다. 리봇을 달고 있는 전보대 아래 싱싱한 무가 가득하다.
비가 내려
조카와 비옷을 입었다.
수요일 백신 2차 접종을 했다는 조카는
2시간만 자고 왔다는 말이 무색하게
잘도 걷는다.
그 청춘이 부럽다.
멀리 모슬봉의 첨부가 보인다.
목적지를 알고 가는 인생은 좋은거다.
바람이 이렇게 거친 날
두통을 안고
잠도 안 자고
우린 여기서 왜 걷고 있는 걸까?
완만한 언덕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모슬봉을 올라가는 동안
노랗게 익어가는 귤과
다 익은 콩과
가출을 즐기는 닭과
바닥 가득한 식물들과
죽은 자의 무덤과 동행했다.
산 것과 죽은 것.
과거와 현재를 생각했다.
현재와 함께 동행하는 지난날의 현재를
오래된 나의 미래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는 듯하다.
5킬로를 지나 드디어 중간 스탬프
서있기 조차 힘들 만큼 부는 바람에도 11코스 간세 스탬프를 찍고 나니 기쁘다.
멀리 산방산이 듬직하다.
두통은 여전하다.
늘 갖고 다니던 타이레놀은 왜 없는 것인지
모슬봉을 내려가는 길에서 달팽이를 발견했다.
사진을 찍고 나니
사람들이 밟으면 안 된다고 숲으로 옮겨주는 조카
울컥했다.
농담 삼아 말했다.
달팽이가 1박 2일쯤 걸려 겨우 기어 온 길을 원점으로 돌려놓은 것은 아닐까? 혹시
아니면 앞으로 1박 2일쯤 가야 하는 길을
하이패스로 전진한 것일까?
조카는 후자라고 생각하자고 했다.
긍정적 마인드^^
정난주 마리아 성지에 도착했다.
비를 피해 잠시 쉬었다.
제주 올레 앞파팀(30일 제주 올레 완주 프로그램)이 함께 쉬었다.
제주 한 달 살기를 제주올레 완주로 삼는 사람들
대단하다.
신평사거리 11킬로 지점
추사관 가는 길
익숙한 거리가 다정하다.
곶자왈이다.
신평 무릉 사이 곶자왈로 들어선다.
새라고 불리는 억새(?)가 가득한 밭을 지난다.
역시 비는 계속된다.
더 거칠어지지 않으면 좋겠다.
바람이 불 때마다
후드득 소나기가 내린다.
숲길은 계속된다.
다른 곶자왈에 비해 순하다.
따뜻한 느낌의 곶자왈이다.
햇살 가득한 봄날을 닮은 숲이다.
인생의 화양 연가 같은 숲길이다.
곶자왈을 벗어나니
제9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숲길 부분 우승길이라는 표지판이 당당히 서있다.
역시 느낌은 정확하다.
그동안 걸은 시간이 나를 성장시킨 것 같다.
무릉이다. 마을을 지키는 팽나무가 여기도 당당히 서있다.
익숙한 길을 따라 무릉외갓집에 도착했다.
두통은 여전했다.
감귤차와 보리 미숫가루를 주문하고 짐을 풀었다.
지붕을 두드리는 거친 바람 소리
실내를 흐르는 노래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다는 걸
잊지말고 기억해줘요.
느닷없이 가슴을 찌른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왜 눈물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따뜻한 귤차와 보리미숫가루로 눈물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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