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51.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Jeeum 2021. 10. 1. 10:03

김영하 (1996).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문학동네.

 

제목 자체가 무척 강하고 가학적이다. 그다지 유쾌할 것 없을 듯한 소설이지만 김영하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읽어볼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134쪽의 길지 않은 것도 괜찮은 이유이다. 

 

역시 너무 강렬한 캐릭터들이 가득해서 유쾌하지 않다. 유쾌하려고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그렇다는 말이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화자인 나와 K와 C, 세연과 미미 그리고 에비앙(홍콩 여인) 정도, 남자 셋, 여자 셋. 나는 자살을 도와주는 것이 직업이다. 일을 마칠 때마다 고객의 얘기를 글로 남기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죽음을 보티브로 한 유명한 그림과 소설 속 인물을 묘하게 연결시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저 무심히 보았던 그림들을 다시 오랫동안 바라보게 만든다. 

 

미미와 세연은 죽는다. K는 택시 운전수, K의 형인 C는 설치 비디오 아티스트다. 이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있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모두 적당한 정도의 광기나 우울, 자기 파괴의 본능이 있다. 이런 것들이 자주 표면으로 올라올 때 삶은 고달파지고 어려워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런 것들이 표면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런 인물들을 보고 나면 덩달아 우울해진다. 

 

딱 우울하기 좋은 계절. 잘 건너가야 하는데. 날마다 조금씩 몸도 마음도 쳐진다. 가끔 꿈조차 어지럽다. 어지러운 꿈을 꾸고 나면 온몸이 아프다. 밝아오는 날을 생기로 맞으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자연스럽지 않다. 그래서 노력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도 한다. 

 

 왜 소설에서는 여자만 죽고, 남자는 남고 또 남자가 여자의 죽음을 도와주는가? 미미나 세연은 왜 사랑받는 존재이면서 스스로를 사랑하려고 하지 않는가? 자신을 파괴하고자 하는 본능도 남녀가 다른 것인가. 남자들은 남고 여자만... 오해는 말라. 나는 과격한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지금 너무 좋기만 해서 우울이 뭐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감정을 적당히 조절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크게 남는 문장이 없다. 딱 3군데 줄이 남았다.

 

가끔 허구는 실제 사건보다 더 쉽게 이해된다. 실제 사건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구차해 질 때가 많다. 그때그때 대화에 필요한 예화들은 만들어 쓰는 게 편리하다는 것을 아주 어릴 적에 배웠다. 나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즐긴다. 어차피 허구로 가득한 세상이다.(58쪽)

 

"흑백사진은 인간이 허구를 보여줘요. 주름살과 주름살 사이에 담긴 한 인간의 인생을 잡아내죠. 주름살과 주름살 사이에 담긴 한 인간의 인생을 잡아내죠. 그런데 그 남자의 눈동자 위로 카메라 플래시에서 반사된 빛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맑아 보일 수가 없었죠.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이제 이 사람은 인생을 다 살았구나 싶더군요."(59쪽)

 

캠코더를 든 관광객들이 한쪽 눈을 찡그린 채 여기저기를 훓고 있었다. 일제 카메라를 들고 누비던 관광객들은 이제 거의 사라져 가고 캠코더의 물결이다. 그러나 비디오카메라는 블랙홀처럼 궁전을 삼키고 궁전 앞 연못을 빨아들인다. 그들 기억 속에 벨베데레는 흐릿하고 푸른 기 감도는 시각의 영상으로 수렴된다. 그들은 기억의 불멸을 꾀하느라 생생한 현재를 희생한다. 처량하지만 인간의 숙명이다. (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