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찼다. 시월의 중심에서 더위와 추위가 마주치고 있었다. 산바람이 차서 걷는 방향을 거꾸로 틀었다. 생각보다 날이 찼다. 입은 옷이 얇았다. 왠지 아침부터 맞바람에 걷고 싶지 않았다. 바람보다는 햇살이 고팠다.
채 지지 못한 둥근달이 투명하게 서쪽 하늘에 떠 있었다. 달 아래 부지런한 자동차가 조용히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동편에는 산과 하늘의 경계를 따라 붉은 빛깔이 드넓게 피어나고 있었다.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뜨거운 해가 올라오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과 태어나는 것, 물러가는 것과 몰려오는 것의 빛이 너무 달라 몰래 놀랐다.
내려앉을 달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오르는 해를 향해 걸었다. 몸이 빨리 따뜻해질 것 같았다. 떠오르는 붉은 해의 기운이 몸을 뚫고 들어와 잠든 눈이 밝아지고, 깨어날 것 같았다.
주말 아침, 강변 산책길의 사람이 다소 줄었다. 갑작스런 추위 탓이다. 추위에 약한 노인들은 조심해야 하니까. 독감주사도 맞아야 하고, 자식들의 걱정도 챙겨야 하니까. 햇살이 올라오면 시간을 늦추어 천천히 나올 것이다. 동쪽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해가 고속도로 아래 깊은 강물 표면에서 퍼지고 있었다.
몰려오는 것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 몇 걸음 걷지 않아 해는 고속도로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순식간에 쑤욱 뻗어 올라왔다. 해의 거침없는 비상을 막을 것이 없다. 어둠이 사라진 지 이미 한참 지났지만 해가 하늘에 높이 피어나니 세상에 숨어있던 그림자가 진다. 금호강변에 작은 솔밭에도 세월을 닮은 그림자가 졌다. 나무는 세월을 닮아 휘고 비틀어지고 거친 몸을 한 채 하늘 향해 뻗어있었다. 나무의 삶의 두께를 닮은 그림자가 땅에 누워 자신을 바라보았다. 해를 등지고 있는 나무들은 늠름해 보였다.
가을에는 차가운 바람에 햇살이 더하면 좋다. 햇살이 강한 날은 바람이 있어야 하지만 햇살이 없는 날에도 작은 바람이 불어야 더욱 좋다. 자연 속에 태어난 것 가운데 좋지 않은 것이 무엇이랴. 백신 2차 접종으로 이틀 동안 집안에 갇혀 있다 날이 밝자마자 튀어나왔다. 팔공산 쪽에는 불어오는 바람이 부담스러워 반대편으로 걸었더니 이렇게 햇살 와랑와랑한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시간이 나에게는 ‘가을 날 좋은 한때’이다. 걷는 것은 소일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함께 시간 속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이런 좋은 한때를 가득가득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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