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나의 언어

일년 전 내게서 온 편지

Jeeum 2021. 11. 4. 13:22

일 년 전 나에게서 엽서가 왔다. 올 때가 되었다 싶었는데 왔다. 지난해, 10월 24일 나는 동료와 함께 올레 7코스를 걷고 있었다. 서귀포 올레 여행자센터를 출발해 월평마을까지 걷는 코스이다. 날씨도 적당했고, 몸 상태도 좋았다.  돔베낭 길을 걷다 바당 길이 막혀 서귀포여고 앞 도로까지 나와 걷다 다시 바다로 내려갔다. 그 길을 따라 걷다 '속골'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거기에 오늘 내가 받은 엽서를 보내준 우체통이 있다.

 

친구와 함께 각자 일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썼다. 시간을 거슬러 느리게 도착하는 편지. 일 년이 지난 뒤 같은 시간대에 나는 과연 잘 살고 있을지 걱정하면서, 부디  잘 살고 있기를 소망하며 두서없는 글을 썼었다. 그것이 일 년이 지나 내게로 날아왔다.

 


난 '지금'이 소중해요.

'지금'을 잘 살아야 그 다음의 '지금'이 있으니까요.

'지금' 난 올레길을 지나고 있어요.

든든하고 안심이 되는 친구와 함께~ 소곤소곤 삶의 얘기를 나누며.

건강한 다리가 꼬닥꼬닥 걸어주어 고맙다고 말하며 지나고 있어요.

내가 사랑하는 파란 하늘, 햇살, 수많은 사연을 전해주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다음에는 꼭 마스크없이 걷게 되길 소망하며.

 

2020년 10월 24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륜동 올레 7코스 속골 바당올레에서

 


짧은 글이지만 일년 전의 내가 편안해서 다행이고 , 그 덕분으로 지금의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은 오래지 않은 과거가 되고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내 시간이 되고 내 인생이 될 것을 알기에. 하루가 너무 소중한 하루임을 알기에. 엄마에게 잘 살겠다고 약속했기에. 

 

그러나 나는 지금 몸이 아프다. 백신 2차 접종 후 많은 사람들이 이삼 일씩 힘들었다고 하는 바람에 접종하던 2주 전에는 나도 꽤 긴장했었다. 다행히 생각보다 증상이 없어 다행이라고 안심했었다. 하지만 지금 난 매우 힘들다. 굉장히 무기력하고 늘어지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찬다. 수업을 하다 보면 더욱 심하다. 아닌 척하면서 일상을 보내려고 하지만 무리다. 이런 와중에 올레 마지막 코스의 반을 무리하게 걸었다. 욕심이 과했다. 출발 전부터 증상은 있었으나 설마 그것이 백신 접종으로 인한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이번 주 내내 힘들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년전의 내가 쓴 엽서를 받은 것이다. 올레길이든 일이든 사랑이든 뭐든.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난다. 욕심을 부렸기에 무사히 마지막 코스까지 맛을 보며 스탬프를 찍고 마무리가 되었지만 덕분에 몸은 살짝 너덜너덜해졌다. 이제 잘 회복시켜야 한다. '지금'이 다음으로 가려면 말이다. 다음 일 년 뒤 나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여유롭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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