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바다 풍경이 필요했다. 해가 뜨기를 기다려 시윤과 둘이 서빈 해변을 찾았다. 시윤은 원피스를 입고 자신이 기억하는 아름다운 해변 '서빈 백사장'에서 완벽한 바닷 풍경 속에 자신을 담고 싶어 했다. 아직 이른 아침 초겨울의 섬바람이 다소 세게 불었다. 머리와 원피스 자락이 뜻대로 나부껴주지 않았다. 해는 구름 속에서 아침잠을 깨우느라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구름 속에 숨은 아침의 태양이 만드는 아무도 없는 바다는 정말 아름다운 풍광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속에 오직 두 사람만의 이벤트가 즐거웠다. 바닷 빛깔이 완벽했다. 현무암도 하늘도 구름도 모두 완벽했다. 어떤 사진도 흠잡을 데 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조카도 만족했다. 덕분에 나도 그 풍경 속에 지금의 나를 남길 수 있었다. 우도 즐기기 첫 번째, 사람 없는 해변에 발을 딛는 것이다.
집으로 가기 아쉬워 크게 반대로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부지런한 배들이 섬을 떠나 육지로 향한다. 그 배를 타고 섬을 즐기러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우도는 자전거, 바이크, 삼륜차가 엄청나게 많다. 마치 자동차와 사람들이 그 사이를 피해 다녀야 지경이다. 그들이 오기 전 아직 조용한 '우도 해안로'를 드라이빙했다.
천진항을 지나 바다를 따라 길을 들어섰다. 뉴스에서 보던 거대한 리조트는 이제 거의 완성이다. '지석묘'가 좁은 도로 한가운데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 차를 세우고 '우두봉(쇠머리오름)'의 뒤태를 바라본다. 그 바다에서 높이 떠오른 해를 본다. 오늘 하루도 태양의 빛으로 맑고 따뜻할 것이다.
다시 올레 리본을 따라 '쇠머리 오름' 입구로 갔다 '검멀레 해변'을 지나 마을 길을 따라 '하고수동'으로 돌아왔다. 한적한 여기도 이제 곧 사람들로 북적거릴 것이다. 부지런한 우도 사람들은 벌써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고래 펜션'에서 제공하는 조식은 간단하지만 든든하다. 토스트 빵 하나, 삶은 계란 하나, 시리얼 한그릇, 방울토마토와 키위 그리고 요플레. 카페 '결'이 제공하는 아메리카노 한잔. 완벽하다. 충분하다. 카페 '결'의 아침 바리스타는 아들이다. 어제 있던 분은 사람 눈을 안 보더니 이 청년은 그러지 않는다. 커피도 상큼하니 취향에 맞는다. 굳이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넉넉하게 좋다.
그러나 충격적인 소식도 있었다. 체크 아웃하고 들리기로 했던 '밤수지맨드라미' 책방이 오늘 문을 닫는다는 공지가 어젯밤 12시가 넘어 인스타그램에 공지가 되었단다. 우도 즐기기 두 번 째는 섬 속의 섬 책방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인연의 끈이 짧다. 꼭 가보고 싶었는데..... 그들 부부가 여기 사는 이유도 궁금하지만 그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닌 영역이고. 이곳에 하나밖에 없는 책방에는 대체 어떤 사람이 와서 어떤 책을 사는지 무척 궁금했었다. 우도에서 유일하게 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던데. 나의 우도 즐기기 두 번 째는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지난여름에 눈여겨봐 둔 '문진'을 사러 '우도 i'로 갔다. 하고수동 해안은 이미 사람들로 메꿔지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 알 안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담긴 문진. 독서를 하는 동안 내 곁에 둘 친구 찾기. 우도를 즐기러 온 세 번째 까닭이다.
문을 닫은 책방이지만 가보기로 했다. 마을 안길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아주 느리게 달렸다. 여기는 진짜 제주 섬이 분명하다. 좁은 마을 길에서 속도를 낼 수는 없다. 폭이 좁다. 낮은 돌담 사이를 달리는 기분이 좋다. 담장 너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으면 싶었다. 우도를 찾는 사람들이 주로 바다를 즐기는 탓일까 마을 안 길은 조용하다. 올레 리본을 만나면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갑다. 땅콩을 모두 베어내고도 건강해 보이는 붉은 밭에 검은 새 떼가 식사를 한다. 거친 바람을 막아주는 돌담, 이제 곧 멀어질 가을의 갈대. 우도 등대가 보이고, 성산리와 종달리가 보인다. 'I LOVE UDo'
'Nice to meet BOOK' '밤수지맨드라미' 책방은 이렇게 메시지를 남겨두고 깊이 홀로 잠들어있었다. 바닷가의 책방. 파도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하다. 바로 옆 '하하호호'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책을 읽다 금세 배가 고파질 것 같다. 깊숙한 공간에 어떤 책들이 있을지 너무 궁금하다. 가끔 심야책방도 한다는 안내문이 더욱 아쉽게 한다. 좋은 인연이 되려나 만남이 쉽지 않다.
점심을 먹으러 새우전문점 '우도로 193'으로 간다. 시윤의 눈을 끄는 미끄럼들과 그네가 있어 잠시 차를 멈춘다.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타고 맑은 하늘도 본다. '우도 북카페'라는 표지판도 보인다. 오래된 학교 단층 건물을 마을 북카페로 운영하고 있었다.
우도로 193의 '샐러드 우동'과 '토마토 우동'은 압권이었다. 땅콩 발린 새우튀김도 고소하게 맛있었다. 두 개의 넓은 창문으로는 땅콩밭도 보이고 바다도 보인다. 멀리 우도 등대도 보인다. 어느 방향에서 걸어와도 '우도로 193'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여름 올레길을 걷고 천진항으로 걸어가다 만났던 곳이다. 시원한 토마토 우동 국물 한 모금이면 추위도 사라질 듯하다.
'우도 비양도' 멀리 차를 세웠다.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다도 이미 깊어져 빛깔마저 짙었다. 자전거와 전동 삼륜차들이 엉키는 곳을 피해 금방이라도 고래가 물을 뿜을듯한 바다를 보며 걸었다. 비양도 둘레를 천천히 걸었다. 등대로 들어가는 입구에 정낭이 걸쳐 있었다.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여행자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해녀의 집에서 장작불에 뿔소라를 굽는 냄새가 몰려온다. 맛있다고 떠드는 소란스럼이 파도를 타고 멀리 사라진다. 봉수대에 올랐다. 생각보다 높다. 여기서 불을 피우면 어디서 누가 바라보는 것일까.
이제 슬슬 육지로 나가야겠다. 가을 햇살이 따갑다. 선크림을 잔뜩 발랐지만 피부가 따갑다. 다시 크게 우도를 한 바퀴 돌아본다. 모두 돌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아주 조심해야 한다. 다시 배를 타고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돌아왔다.
'가끔은 이렇게 > I Love TRIP'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소한 여행의 기록 2 (0) | 2021.12.23 |
---|---|
소소한 여행의 기록 (0) | 2021.12.22 |
우도에 머물다 (0) | 2021.11.26 |
짧은 여행 : 춘천 (0) | 2021.11.21 |
제주 올레 18-1코스, 추자도 (0) | 2021.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