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렇게/I Love BOOK^^

마이너리그, 2022-30

Jeeum 2022. 5. 11. 15:44

은희경(2001). 마이너리그, 창비.

 

58년 개띠 고교 동창생 승주, 조국, 두환 그리고 형준의 25년 그저 그런 보통의 얘기들. 70년대 고등학교 교실에 어디나 있는 어중간한 아이들의 무리. 그들은 눈에 띄게 좋은 집안의 자제도 아니고, 특출 나게 공부를 잘해 선생님의 사랑을 받지도 못한다. 어느 시대의 십 대들이건 그들의 몸에도 걸핏하면 끓어오르는 양보 없는 10대의 피가 끓어 올라 하지 말란 짓은 요령껏 다해 본다. 네 명은 동시에 형준의 어릴 적 친구인 아름다운 여고생 J여고 펜팔부 소희를 사랑하고, 건수를 잡으려 학교 앞 중국집에서 배갈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며 음모도 한다. 소설은 만수산 4인방의 연대기인 셈이다.

 

스스로에게 보이는 것들을 중심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멈추고 뒤돌아보면 그렇게 의식없이 보내버린 시간이 쌓여 인생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53쪽). 그렇다고 그들이 바뀌고 그들의 인생이 바뀌는 것은 없다. 그들은 대세가 아니라 대세의 그림자에 가려진 마이너들.

 

어김없이 그들도 70년대, 80년대를 통과한다. 1987년 서른이 되어서도 그들의 연대는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지질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문장들이 소설을 계속하여 읽게 만들고, 자주 소리 내어 웃게 만든다. 진한 농담 같은 헛소리를 눈으로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웃고 여전하게 계속 읽게 만든다. 은희경의 다른 소설처럼.

 

소희와 함께 사라진 두환의 소식만 감감할뿐. 다행히 모두 결혼을 했다. 가장이 되어도 천성이 바뀌지 않는다. 조국은 여전히 건들거리고, 승주는 여전히 바람기가 쌩쌩 불어대고, 형준의 지적 허영은 변함이 없다. 소희의 부고와 함께 두환이 다시 나타나고 아름다운 모두의 첫사랑 소희를 훔쳐 달아논 두환의 인생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된다. 어찌 보면 넷은 사기꾼 같기도 하고, 바람만 들어 세상을 발을 딛고 살아가지 못하는 중년이 되어 인생을 농담으로만 일관하는 무책임한 어른이 된 듯하다. 요즘 말로 한심한 '루저' 중년이 된 셈이다.

 

세월은 평등하게 흘러 그들도 결국 스스로가 마이너인줄 알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최선을 다해 살진 않는다. 결국 이 세상에 불가역적인 서열불변의 법칙이 존재함을.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당연한 일이었다. 최고가 되지 못할 바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자존심을 지켰던 것이다. 결과가 보장되고 완전히 조건이 갖춰져야만 뭔가 시작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었다.(178쪽)"

 

"The winner takes it all." 이라 했던가. 승자독식. 우리 세대의 유전자 속에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인정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질 권리가 당연한가? 아니면 패자는 모든 것을 잃어야 당연한 것인가? 이 세상 진짜 그런가? 그러면 소풍은 언제 누가 하나? 작가 '은희경'은 50대 후반의 나로 하여금 242쪽을 계속 실실 웃으며 끈질기게 보게 만들곤 결국 세상에 대한 희망보단 힘을 뻬도록 만들고 말았다. 뒤돌아보고 어느를 걷고 있는지 잘 걷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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